쌍둥이ㅡ 양보의 대가/감상규 언니는 모르겠지, 그해의 봄 소풍을 반숙된 달걀에선 병아리가 나왔고 사라진 보물종이가 영원한 미궁인 걸 두 발은 위태로워 네 발이 필요했어 날개 없는 말개미가 꼭대기에 오르듯이 나 대신 이어 달렸던 언니만의 거친 호흡 서로의 옷을 입고 고백했던 그런 하루, 강에 버린 구두 대신.. 시조 2017.01.02
자화상/조경자 겉 다르고 속이 다른 내 모습 몰라보고 아줌마도 서러운데 할머니, 할머니 또 다른 흡사한 호칭 요즘 들어 자주 듣네 눈가에 늘어나는 주름살 속수무책 장밋빛 소리 없이 내 젊음 떠나가도 가슴에 꺼지지 않는 열정 푸른 꿈 이고 가네. 시조 2016.11.24
투명을 향하여/이옥진 은행잎이 걸어간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은행잎이 야위어간다 유화에서 수채화로 제 갈 곳 아는 것들은 투명을 향해 간다 어머니 걸어가신다 검정에서 하양으로 어머니 날개 펴신다 소설에서 서정시로 먼 그 곳 가까울수록 어머니는 가볍다 시조 2016.11.11
수선/최재남 바람 든 무릎 위에 지나간 시간을 뉘고 떨리는 손을 달래 가위를 드는 저녁 청바지 해진 허벅지 너도 뼈가 허옇다 돋보기 고쳐 쓰고 서걱서걱 잘라낸 뒤 팽팽히 당겨보지만 어긋나는 무릎과 무릎 창밖에 버려두었던 별빛 한 첩 덧댄다 시조 2016.10.28
기차여행/문경아제 새벽별은 잠깨어 선하품을 하는데 넓은 바다 외딴섬은 무에 그리 서러울까 바람의 손끝에 따라 하얀 피만 토해낸다. 산밑에 앉아있는 허름한 저 양철집 허리굽고 등굽은 홀할머니 아방궁 까악깍 까아악 깍깍 산까치 아침인사. 영주를 떠나올 땐 객실이 듬성듬성 원주에 올라서자 손님이 .. 시조 2016.10.17
여울물소리/성춘복 무언가가 그리워서 천지를 떠돌 무렵 가는 구름 따라가며 내 눈에 담은 것들 천 갈래 가슴 녹이는 꽃바람이 죄 아닌가. 한두 잎 꽃을 쫓아 살아가던 젊은 시절 강 건너 구름 끝에 자갈밭 세워두고 큰 키의 피나무 앞에 두 무릎 세운 일들 가슴엔 불심지를 두 눈엔 쌍심지를 올봄은 흔흔한.. 시조 2016.09.24
추청(秋晴) 필시 무슨 언약이 있기라도 한가부다 산자락 강자락들이 비단 필을 서로 펼쳐 서로들 눈이 부시어 눈 못 뜨고 섰나부다. 산 너머 어느 산마을 그 언덕 너머 어느 分校 그 마을 잔치 같은 운동회 날 갈채 같은 그 무슨 자지러진 일 세상에는 있나부다. 평생에 편지 한 장을 써본 일이 없다던.. 시조 2016.09.02
상사화 피고 져도/조평진 꽃잎에 피운 연정 가슴에 불 지펴도 담홍빛 여섯 꽃잎 갈증에 목마르고 운명의 실타래들만 풀 길 없어 아려라. 내 임이 머문 자리 넋 놓아 불러 봐도 엇나간 사모의 정 임의 발길 못 따르니 금지된 애틋한 사랑 맺혀 우는 그리움들. 시조 201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