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89

참나리꽃

학유정(鶴遊亭) 가는 길에 참나리꽃이 피어났다. 곱다. 참 곱다. 옛날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 내동무 동식이네 집, 담 밑에도 해마다 이맘때면 저리 고운 참나리꽃이 피어나곤 했다. 우린, 참나리꽃을 '호래이 꽃'이라고 불렀다. 호래이 꽃은 참나리꽃의 경상도 문경 지방 사투리다. 또 '호래이'는 호랑이의 사투리다. 고향마을에서 함께 자랐던 동식이는 탄광에 오랫동안 근무를 해왔다. 그 친군 발파 면허를 가지고 있는 화약관리 전문가였다. 10여 년 전, 동식이가 공사현장에서 발파를 하다 날아온 돌에 얼굴을 맞아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입원 치료를 받고 한동안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요즘에 들어서서 아주 말이 어눌해졌다. 전화를 걸면 이런저런 성인병으로 비실되는 내게 "친구야, 너는 건강하지!"라고 한다. "..

미니 픽션 2020.07.13

못 말리는 꼬맹이 손녀딸 입/문경아제

"고모는 이쁜데 할머닌 안 이뻐, 얼굴이 쭈글쭈글해서 할머닌 안 이뻐!" 대중없이 종알거리는 꼬맹이 손녀딸 조그만 입이 엉덩이에 매를 번다. "조 노무 자식, 조게 무라카노. 조노무 자식 오늘 저녁부터 밥 안 줄란다." 할머닌 속이 뒤집어지는지 "깩!"고함을 지런다. 아이들 고모가 중재에 나선다. 꼬맹이 질녀를 앞에 앉혀놓고 타이른다. "슬기야, 할머니도 이쁜 걸 좋아하시거든. 이쁘지 않다면 싫어하시거든. 알겠니?" 꼬맹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바꿨다. "고모는 이쁘고 할머니도 쪼끔 이뻐!" 밥 못 얻어먹을 까 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아이들은 부담을 자고 저네들이 사는 경기도 의왕으로 올라갔다.

미니 픽션 2020.05.04

문경아재 소설가 되다 - 문경아재 김동한

작년 10월1일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 4개월동안 대구에 있는 한국민들레장애인협회에서는 '제22회민들레문학상 공모전'을 개최했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지나치겠는가! 문경아제도 단편소설, '남간재 아리랑' 을 투고 공모전에 응모했다. 3월20일 심사결과가 발표된다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많이 늦어졌다며 엊그제 심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전화로 개별통보된 뒤 카페에 떴다. 문경아제의 소설, '남간재 아리랑'이 대상 다음인 가작으로 당선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시와 동시는 스승이신 선배작가의 추천으로 등단할 수 있었지만 소설만은 홀로서기를 하고싶었다. 격이 높은 문학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당선되어 당당히 등단하고 싶었다. 사회적 기부로 운영되는 한국민들레장애인협회는 재정이 열악하다고 했다. 해서 당선자..

미니 픽션 2020.04.23

나의 노래 나의 인생(제1부)/문경아제

나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좋아는 하지만 잘 부르지는 못합니다. 음치를 조금 면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혼자일 때는 제법 한가락한답니다. 막걸리라도 한잔 했다 하면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천정 올려다보고 손바닥 장단 맞춰가며 신명 나게 한곡 뽑아댄답니다. 집사람이 있을 땐 난리가 뒤집어지니까 없을 때 부른답니다. 듣는 이라야 벽과 창문, 텔레비전과 앉은뱅이책상, 무질서하게 방바닥에 쌓여있는 책밖에 없으니 부담될 것도 없답니다. 박자를 띵가 먹던, 음정이 불안정하던 탓할 사람이 없걸랑요. 여기서 잠깐, '띵가 먹다'는 '놓치다'의 경상도 문경 지방 사투리랍니다. 내 블로그는 조선 팔도에서 날래 날래 오신 이웃님들로 구성되었으니 소통(疏通)상 해설을 첨부했습니다. 내가 여덟 살이었을 때, 나보다 일곱 살 더 ..

미니 픽션 2020.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