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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봄 가는 봄/문경아제

봄은 누구에게 들킬세라 땅에 납작 엎드려 살살 기어서 온다 봄은 택지에 살고 있는 시집간 우리 집 애물단지 딸내미처럼 소리 없이 살짝쿵 온다 봄은 우리 집 애물단지 딸내미와 사촌 사이다 해대는 짓똥머리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산과 들에 꽃불 질러놓고 그냥 달아나는 봄이나, 늙은 어미 가슴에 온갖 잔소리 퍼부어대고 가는 우리 집 딸내미나 그놈이 그놈이다 언제 갔는지 도둑놈처럼 가고 없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도 없는 두 놈은 발그스름한 얼굴조차 닮았다

2021.04.05

오랜만에 시 한 편/문경아제

도깨비바늘 /김 동 한 우리 집사람은 문지방을 넘어올 때 발이 아닌 입부터 넘어선다 집사람 잔소린 온종일 삐지 않고 문턱이 닳도록 문지방을 들락거린다 문턱이 닳아 없어져 문설주 내려앉을까 겁이 난다 비쩍 마른 내 몸뚱이를 콕콕콕 찔러대는 집사람 잔소리 옷 벗어 아무 데나 던지지 말아요 콕, 휴지는 꼭 휴지통에 넣어요 콕, 밥 먹을 때 반찬 흘리지 말아요 콕, 바지를 벗어 훌훌 털어댄다 도깨비바늘은 떨어지기는커녕 더 깊이깊이 옷 속에 박힌다

2020.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