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문학 1206

우리 집 서열/문경아제

1위는 시집간 딸내미다. 시집가고 나서도 순위엔 변동이 없다. 2위는 집사람이다. 목 쭈욱 빼고 "깩깩!" 소리를 질러 되거나 생억지 쓰는 덕분에 꿰찬 서열이다. 3위는 나다. 조선시대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호주제도, 가부장적 제도도 무너진지도 이미 오래다. 그러한 형편이니 아무리 가장일지라도 서열이 밀릴 수밖에 없다. 위는 평상시의 서열이고 내우외환(內憂外患)의 변고라도 생기면 순위는 반대로 뒤바뀐다. 집사람이 위경련이 일어났다든가, 하수구가 막혀 여를장대비가 쏟아질 때 빗물이 빠지지 않을라치면 딸아이나 집사람은 하나같이 내등을 떠민다.

일상이야기 2020.05.13

권효섭멸치국수/문경아제

저녁 7시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권효섭 멸치 국숫집에 들러 멸칫국수 2인분을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내외는 이따금 입맛이 깔깔하면 권효섭 멸치 국숫집을 찾곤 했었다. 근데 집사람이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고부터 집안에 틀어박혀 꿈쩍을 하지 않는지라 가게에 들려 사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홀안엔 오늘도 손님으로 가득했다. '먹는 장사는 맛으로, 친절과 성실, 근면으로 승부를 걸어야 된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권효섭 사장이 창업한 이후 걸어온 길이 그랬을 것이다. 우리동네 음식점, '권효섭 몇 치국수'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한다.

맛집 2020.05.13

부부싸움/문경아제

싸웠다. 한판 제대로 붙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식탁에 앉았다. 어제 낮에 떡방앗간에서 해온 쑥떡 절편이 아침밥으로 올라왔다. 먹기 거북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프라이팬에 좀 데워서 올렸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먹었다. 근데 함께 나온 우유도 싸늘했다. 아침이다. 노인네가 마시는 물은 따뜻해야 몸에 부담이 없다고 한다. 봄이라지만 아침은 서늘했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싶었다. 집사람에게 말했다. 전자렌지에 좀 데워달라고. 남편이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얘기였다. 그런데 집사람은 "깨액!" 소릴 질러댔다. 못 마실 정도로 차가운 것도 아닌데 사람 귀찮게 한다고. 그래서 제대로 한판 붙어버렸다. 우리부부는 예나 지금이나 잘 싸운다. 나는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싸움은 반드시 집사람에게 ..

일상이야기 2020.05.10

불장난/문경아제

30년이 훨씬 넘은 옛날 얘기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황종우라는 직장 후배가 살고 있었다. 그 친구에겐 다섯 살 난 이름이 윤우라는 개구쟁이 사내아이가 있었다. 봄날이었다. 서천둔치 언덕길을 따라 어느 양봉업자가 가지런히 벌통을 내다 놓았다. 근데 고 맹랑한 윤우녀석이 비슷한 또래 놈과 얼려 바싹 마른 잔디밭에 불을 싸지르고 말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불길에 부채질을 해댔다. 봄 불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잔디밭을 까맣게 태우고 불길은 잡혔다. 벌통안 벌들은 타 죽거나 연기에 질식되었고, 약삭빠른 놈들은 잽싸게 도망질을 해서 목숨을 구했다. 그 친군 그일로 양봉업자에게 30만 원을 배상했다.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이태원 발 코비디 19가 나라 이곳저곳에 도깨비불을 싸지르고 ..

길따라 물따라 2020.05.10

소쩍새울음소리/문경아제 김동한

어젯밤 아홉 시 반쯤 소설 '서천 연가'를 구상하려고 서천을 돌아오다가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었다. 소쩍새 울음소리는 삼판 서고택 뒷산에서 들려왔다. "소쩍소쩍 솟솟쩍! 소쩍새 울음소리는 구성지게 들려왔다. ^솟솟쩍 솥이 작다 솟솟쩍^ 소쩍 새 울음소린 끊임없이 들려왔다. 집에 돌아와 그 얘길 집사람에게 했더니 우리 집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노무 소쪽새가 벌써부터 운데요. 당최 말 같은 소릴 해야지" 서울 가본놈하고 안 가본 놈이 쌈 하면 가본 놈이 지게 마련이다. 세상은 팔힘센 놈이 이긴다. ^늘~^

길따라 물따라 2020.05.08

추억속의 어머니날/문경아제 김동한

지금의 어버이날이 예전엔 어머니날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모두 자식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인데, 어머니날은 있는데 아버지날은 왜 없나?라는 형평성 부재가 사회적 공감을 일어 켰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어버이날이다. 해서 자연스레 어머니날은 없어졌다. 60여 년 전 얘기다. 옛날 중학교 다닐 때, 해마다 어머니날이 다가오면 읍내 신발가게에 들려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어머니에게 사다 드리곤 했다. 외아들이 사다 드리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으시던 울어매 얼굴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나는 문경 가은이 고향이다. 오늘은 제47회 어버이날이다.

길따라 물따라 2020.05.08

못 말리는 꼬맹이 손녀딸 입/문경아제

"고모는 이쁜데 할머닌 안 이뻐, 얼굴이 쭈글쭈글해서 할머닌 안 이뻐!" 대중없이 종알거리는 꼬맹이 손녀딸 조그만 입이 엉덩이에 매를 번다. "조 노무 자식, 조게 무라카노. 조노무 자식 오늘 저녁부터 밥 안 줄란다." 할머닌 속이 뒤집어지는지 "깩!"고함을 지런다. 아이들 고모가 중재에 나선다. 꼬맹이 질녀를 앞에 앉혀놓고 타이른다. "슬기야, 할머니도 이쁜 걸 좋아하시거든. 이쁘지 않다면 싫어하시거든. 알겠니?" 꼬맹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바꿨다. "고모는 이쁘고 할머니도 쪼끔 이뻐!" 밥 못 얻어먹을 까 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아이들은 부담을 자고 저네들이 사는 경기도 의왕으로 올라갔다.

미니 픽션 2020.05.04

세상사는 이야기/문경아제

2015년 5월, 블로그를 만들고 글 몇 줄을 올렸을 때 친구 하자며 찾아온 블로거가 강촌과 해와 달님, 풍경소리님이었다. 그리고 5년이 훌쩍 넘어섰다. 동갑내기 블친 강촌은 그때나 지금이나 경기도 양평에 살고, 해와달님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봉현면 노좌에 살고 있다. 객지살이하다 귀촌했다는 풍경소리님은 땅끝마을 전라도 해남에서 살아간다. 봉현면 노좌리와 유전리에 과수원이 있다는 해와 달님과는 요즘들어 이따금 전화통화를 한다. 해와 달님이 운영하는 밴드에 초대되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사과꽃 속아내느라고 바쁘다고 한다. 사과농사 대박나거라. 올해도 내년에도 또 저 저 내년에도, 에플뜰에 평화를 빈다.

일상이야기 202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