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사랑시 8

세월이 가면/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싸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 은 작년 가을엔가 내블로그에 소개된 바 있다. 박인환 시인은 1926년 8월15일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나온 박 시인은 1946년 '국제신보'를 통해 등단했다. 그는 195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었다. 박인환은 술을 좋아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지금 껏 전해지는 ..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최승자

겨울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에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이락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오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없는 헤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떠돌던 그곳... 너는 없다 청파동엔 숙명여대가 있다.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