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사랑시

먼 後 일/김소월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7. 19. 18:16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1925년)

 

 

    어제도 오늘도, 먼 훗날에도 잊지 못할 '임'

 

 산산히 부셔진 이름이여!/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초혼>)

 소월(본명 김정식;1902~1934)의 시에서 사랑의 상실은 이처럼 가차 없이 절절하다.

 그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어...' 이후 이별과 그리움이라고 하는 정한(情恨)의 정서를 우리말의 가장 아름다운 분화구로 터트렸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를 막론하여 읽는 사람을 그 뜨겁고 눈물겨운,그리고도 리드미컬한 언어의 호수 속으로 빠뜨린다. 흥겨운 듯 눈물겨우니 이를 어쩌노!

 그의 사랑의 깊이와 그에 응하는 말의 질서는 음악으로도 적절하여 우리 시 중 가장 많은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다. 소월의 대표작 <산유화>만 해도 남인수의 가요로 조수미의 가곡으로 모두 애창됐다.

 <먼 後일>은 소월의 생전 유일한 시집,<진달래꽃>의 맨앞을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소월 자신도 대표작으로 생각한 듯하다. '못 잊겠지만 그래도 한 세상 지내시라며 떠나간 임' (<몾 잊어>), '심중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임' ,그래서 '산산히 흩어진,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 , 현재( '오늘' )도 과거( '어제' )도 아닌 먼 미래( '후일' )에도 잊을 수 없다고, 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그 '임' 이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임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세속적 사랑의 대상이며 '저만치' (<산유화>) 초월한 자리의 임을!

 소월은 서른셋이라는 황금의 나이에 생아편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자결은 "몾잊어 생각이 나겠지요./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몾잊어>) 라거나, '그립다/말을 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번" (<가는 길>) 이라고 그의 <임>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순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세상을 떤 소월에겐 김정호(金正鎬)라는 셋째 아들이 있었는데, 6.25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이남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간혹 서정주 시인의 집을 출입했다고 하는데 미당의 회고에 의하면 기차에서 수레를 밀고 다니는 장사가 되었다가 그것도 아내의 병간호 때문에 못 하게 됐고, 나중에는 국회의사당의 수위로 살았다고 한다. '최고의 국민 시인'의 아들의 삶 치고는 서글픈 사연이다.   

                                                               해설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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