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사랑시

세월이 가면/박인환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6. 12. 13:38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싸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 은 작년 가을엔가 내블로그에 소개된 바 있다.

박인환 시인은 1926년 8월15일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나온 박 시인은 1946년 '국제신보'를 통해 등단했다. 그는 195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었다.

박인환은 술을 좋아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지금 껏 전해지는 박인환의 사진이라곤 두꺼운 외투입고 찍은 단 한장의 흑백사진 뿐이다. 사진을 찍은 계절이 봄이라고 한다. 세탁소에 맡겨둔 봄옷을 찾을 돈이 없어 그렇게 두꺼운 겨울외투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1956년 3월 이상 시인의 기일을 맞아 이상을 기린다며 친구와 밤새워 막걸리를 퍼마신 박인환은 과음으로 그만 영면하고 말았다. 박인환은 1956년 5월26일, 3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천재시인 박인환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그렇게 떠나갔다.

님이시여, 막걸리 한 사발 원스럽게 못 마신 가난했던 님이시여! 부디 하늘나라에서라도 그 좋아하시던 막걸리 원없이 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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