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합실/문경아제 동쪽에서 온 사람은 서쪽으로, 서쪽에서 온 사람은 동쪽으로, 북쪽에서 온 사람은 남쪽으로, 남쪽에서 온 사람은 북쪽으로 휑하니 가버린 십여 평은 됨직한 크다란 됫박안엔 오십줄엔 들어섰을 눈이 힁한 남정네가 연신 출찰구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밤열시 이십분 안동행열차를 기다리.. 시 2019.06.19
대화2/문경아제 내 폰이 고장났다. 터치기능이 안 먹힌다. 그러니 화면 전환을 할 수 없고, 통화도 안 되고 글도 올릴 수 없다. 어제 하루는 그래서 무척 답답했다. 어제는 그렇게 지나갔다. 오늘아침, 아홉시가 넘자말자 늦은 아침먹고 서천 건너에 있는 LG전자 서비스센타로 직행했다. 찾아온 사유를 말.. 시 2019.06.10
깃발/문경아제 티끌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삶의 모습 모습들이 깃발되어 날린다 뉘집 옥상위 빨랫줄에 걸어놓은 청바지가, 빨간 수건이, 누르스럼한 티셔츠가, 깃발되어 바람에 휘날린다 떨어질까봐 집게로 꼭꼭 찝어놓아 용케도 떨어지지 않는다 뗏국물 주르르르 흐르는 거룩한 삶의 모습들이 형.. 시 2019.05.31
아름다운 시 두편/문경아제 귀 콕토(Jean Maurice Eugene Clement Coctau) 내 귀는 한개의 조개껍데기 그리운 바다의 물결소리여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 찔레꽃 설창수 산 밑 외따른 오막살이집 지난 해 겨울에 불타 버리고 주춧돌만 오롯이 남았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고요한 산 밑 찔레꽃이 곱게 피었습.. 시 2019.05.25
오월/문경아제 김동한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종다리 지저귄다 삐리 삐리 삐빌리 삘리 보리목 뽑으려고 숨가삐 지저귄다 녹색바람 출렁이자 밭고랑에 숨어서 알을 품던 봄꿩이 놀라 푸드득! 하늘로 치솟는다 봄햇살 쬐이며 개울가 덤불속에서 낮잠자던 찔레꽃 푸념소리 나즈막히 들려온다 에그, 종다리는 왜.. 시 2019.05.12
찔레꽃 피는 언덕에 서다/문경아제 어제 낮,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시민운동장 앞에 있는 축협에서 평소 가까이 지내던 몇몇 문우들과 만남을 가졌다. 모임에 나온 문우는 A시인, 소릿꾼 J시인(여), K시인(남) 늘 해맑은 웃음을 선물하는 비타민 K시인(여)과 필명이 문경아제인 나, 김동한이었다.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한 살가.. 시 2019.05.11
갑과 을/문경아제 별도 보이지 않는 오늘같은 썰렁한 밤엔 막걸리 한 사발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 마시곤 싶은 데, 간이 협박을 해서 못마신다 목구멍을 타고 희뿌연 막걸리가 쏟아져 내려오면 내 몸을 떠나겠다고, 가만있지 않겠다고, 그 망할놈의 자식이 협박을 한다 나는 한 마디 대꾸도 못하는 벙어리가.. 시 2019.04.21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 시 2019.04.21
산당화2/문경아제 며칠 전, 길가던 젊은 과수댁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서 말했다 오갈데가 없어요 어르신 딸내미라고 생각하시고 비어있는 문간방 좀 빌려주세요 올봄만 머물다 갈게요 배시시 웃으며 얘기하는 젊은 과수댁 입이 장작불 속살같기에 이것 저것 물어보지 않고 널름 방을 내주었다 실수였다 .. 시 2019.04.04
봄날/문경아제 봄날 /문경아제 김동한 송골재 넘어가는 좁다란 오솔길에 빨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났습니다 그날도 진달래는 곱기만 했습니다. 번드네 마을 조총각과 송골동네 연희 처자는 사랑을 했다네요 얼리꼴라리 얼리꼴라리 사랑을 했다네요 조총각은 곰보였답니다 연희 처자집에서 사위.. 시 2019.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