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길가던 젊은 과수댁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서 말했다
오갈데가 없어요
어르신 딸내미라고 생각하시고
비어있는 문간방 좀 빌려주세요
올봄만 머물다 갈게요
배시시 웃으며 얘기하는
젊은 과수댁 입이
장작불 속살같기에
이것 저것 물어보지 않고
널름 방을 내주었다
실수였다
천려일실의 실수였다
새댁은 정신이상자였다
오늘 오후 학유정에 놀다가
해가 뉘였뉘였할 때 돌아와보았더니
과수댁은 산당화나무아래 쌓아놓은 나뭇단에
불을 싸지르고 말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불길에 부채질을 해대는데
젊은 과수댁의 해설픈 눈웃음에 넋이나간
경찰관과 소방관이 남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어르신,
나뭇단 하나밖에 타버린 게 없는데
저 젊은 애기 엄마
훈방조치해도 되겠지요?"
"빌어먹을 노무 자식들 뭐라카노
방화는 강력범죄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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