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부1/문경아제 햇살 눈부신 한낮에도 별빛 고운 별밤에도 심장이 안좋은 아내는 늘 푸우!하고 가쁜숨을 몰아쉬었다 그럴때면 난 도리질을 하는 아내를 꼬옥 안아주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일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근한 갈햇살님 해맑은 갈바람님 내 부탁 하나 들어주시우 우리 집사람 심장.. 시 2018.11.18
서양민들레1/문경아제 서러워서 피었느냐 쌀쌀한 이 晩秋에 진정 서러워서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밖에 안 되는 네 조그만 꽃을 피웠느냐 뭣이 그리 서럽단말이냐 해돋는 동녘땅 코리아에 그 어느 누가 널 오라고 초대하였더냐 배밑창에 숨어들어 밀입국한 주제에 뭣이 그리 서럽단말이냐 몰래 숨어들었으면 쥐.. 시 2018.11.16
그림자/문경아제 자전거를 타고 밤길을 나설 때면 꼭 따라붙는 낯익은 친구가 있다 안동병원에 진료받으러 갔던 집사람이 돌아온다고 하기에 대문을 나서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오늘밤도 그 친구는 어김없이 날 따라붙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따라붙다 왼쪽 오른쪽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나랑 .. 시 2018.10.15
나의 노래/문경아제 희야, 들리니? 목고개 후미진 곳에서 갈바람 싸늘하다고 목 쭈욱 빼고 울어대는 산비둘기의 설운 울음소리가 네 귀에도 들리니? 희야, 보이니? "하나, 둘, 셋,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구, 팔, 칠, 육, 오, 넷, 삼, 둘, 하나 당소(當所)는 문경아제, 귀소(貴所)희야는 감잡고 응답하라!" 무.. 시 2018.10.14
소녀야/문경아제 저, 유리거울처럼 말간 갈하늘 속에 내가 사랑했던 소녀가 숨어있을 것만 같아 눈비비고 올려다본다 하늘가 어딘가에 배시시 웃으며 숨어있을 것만 같아 찾고, 찾고, 또 찾아보았지만 소녀는 보이질 않는다 그 옛날 어릴적, 열여섯살 작은어매가 걸핏하면 어린 조카를 놀래키던 부뚜막 .. 시 2018.10.12
가을비3/문경아제 청승맞게 울어대던 산비둘기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리는 빗물 속에 녹아버렸나보다 제비새끼마냥 재잘거리던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소리도 내리는 빗물 속에 녹아버렸나보다 윤아 엄마 자전거가 발이 묶였다 윤아 엄만 뭐 타고 출근했을까 눈감으니 보인다 .. 시 2018.10.06
향수(鄕愁)/문경아제 희야, 이 가을밤 고향집 부뚜막엔 귀또리 울겠다 오누이 귀또리 귀뚤 귀똘 울겠다 헐렁한 핫바지에 밤색 저고리 받혀 입은 어리숙한 오래비귀또리가 "귀뚜루귀뚜루!" 어눌하게 울면 눈망울 초롱초롱, 삼단같은 머리에 진자줏빛갑사댕기 곱게 물린 아릿다운 누이가 "오빠아! 그렇게 울면 .. 시 2018.09.10
부탁/문경아제 파란 하늘 유유자적 흘러가는 저 하얀 뭉게구름님, 내 부탁하나 들어주시우 경기도 의왕 하늘 너울너울 지나실때 땅 한번 내려다보시구려 우리 집 큰손녀딸 얼만큼 더 예뻐졌는지 떼쟁이 막둥이 손녀딸 깡충깡충 줄넘기 잘 넘는지 시 2018.09.05
가을비1/문경아제 비가 내린다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름 소나기처럼 자락자락 쏟아진다 고추잠자리는 감나무 밑에 메밀잠자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한갓진 곳에 숨어있는 까만 고양이 등에 올라앉아 비피하겠다 저 비, 그치고 나면 우리 집 화장실안에 살고 있는 어린 귀뚜리 오누이 귀뚤귀똘 울겠다 귀.. 시 2018.08.28
여름6/문경아제 안됐수 참 안됐수 사람 그렇게 푹푹 삶아놓더니만 참 안됐수 귀뚜라미 등에 업혀 스리슬쩍 다가오는 가을에게 자리 내어주고 슬금슬금 달아나는 그대의 몰골이 참 안됐수 그러나 고맙수 억수같이 퍼붓던 소나기 그치던 날, 동쪽 하늘에 보남파초노주빨 일곱색깔 무지개 곱게 걸어줘서 .. 시 2018.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