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彼岸)의 언덕/문경아제 우유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음식물쓰레기통을 열면 시궁창 냄새보다 더 역겹다 토요일 오후, 쏟아져 나온 파지를 정리한다 해도해도 출구가 안 보인다 땀에 절은 옷이 몸에 착착 달라붙는다 태양의 열기가 무섭다 "해님! 요런 날은 좀 못본척 하면 안돼겠수?" 더위를 피해 707동 3, 4라인 .. 시 2018.07.15
구름/문경아제 땅도 마흔두 평 하늘도 마흔 두 평 자그만 우리집 하늘엔 뭉게구름이 가득하다 그림을 그린다 천상천하 멋쟁이 화백 뭉게구름이 그림을 그린다 양떼도 그리고 골목길 졸랑되며 걸어가는 강아지도 그린다 내맘 눈치챘는지 구름은 어느결에 첫사랑 갑사댕기를, 여름 보리타작마당에서 막.. 시 2018.07.13
여름날1/문경아제 열린 창너머로 희멀건 하늘이 보인다 넓은 하늘이 쓸쓸해보인다 제비 몇마리도 날아다니지 않는 저 넓은 하늘이 왠지 쓸쓸해보인다 그대와 내가 쳐놓은 저 하늘 속 그물이 제비의 자유를 구속해버렸다 그 옛날 어릴적 울밑 애호박 따서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칼국수 한그릇 뚝딱하고 씨.. 시 2018.07.11
골목길7/문경아제 잃어버린 젊은 날의 나를 찾으러 준수했던 젊은 날의 나를 만나러 골목길을 걷는다 첫사랑 갑사댕기 앞집 분이를 만나러 골목길을 걷는다 강아지가 졸래졸래 뒤따라 온다 우린 앞서거니 뒤서거니 빙그레 웃으며 타박타박 걸어간다. 시 2018.07.11
마음/염석헌 마음 주머니가 비어 있는 걸 보고 하나둘 채워 넣는다 공 하나 공 둘 공 셋 가득 채워진 주머니를 보며 뒤돌아선다 다음 날 마음 주머니가 비어 있는 걸 의아해하며 다시 채워 넣는다 가득 채워진 주머니를 보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뒤돌아선다 마음 주머니가 또 비어 있자 곰곰히 생각.. 시 2018.07.10
귀향/문경아제 파지정리하다가 피곤하여 파지상자에 늘브르져 앉았다 한해 두해 세월이 가고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 먹고 일흔에 귀 두개가 붙어버리자 몸이 약한 나는 경비일도 힘들어졌다 앞동네 어느 집에서 피아노소리가 들려온다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눈을 감는다 바람등타고 훨훨 날아 고향.. 시 2018.07.05
풀/문경아제 "윙윙!" 소리도 요란하게 바람이 분다 칠월, 뙤약볕 아래 때아닌 북서풍이 살차게 불어온다 예쁘장한 사모님 바람이다 미모의 사모님이 칠월 염천에 북서풍을 일어키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날려가지 않으려고 풀들이 납짝 엎드린다 키큰 풀이 외친다 "더 납짝 엎드려라, 날려간.. 시 2018.07.04
비/문경아제 곱게 오시는 당신은 좋지만 술취한 듯 미친듯 비틀거리며 오시는 당신은 싫어요 곱게 곱게 오세요 널뛰듯 오시지 말아요 널뛰듯 오시면 삽짝 앞에 소금뿌릴래요 청보리밭 녹색바람처럼 랄랄라 노래부르며 생긋 웃으며 오세요. 시 2018.07.01
도깨비/문경아제 그 옛날 초등학교3학년 때 목고개마루에서 만났던 도깨비는 머리에 뿔이 달린 일본도깨비는 아니었다 딴엔 조선땅에 산다고 조선옷을 입고 있던 이 땅의 도깨비였다 그 덜 떨어진 도깨비는 멍청하게 지게를 거꾸러지고 있었다 그래도 도깨비인지라 난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다 오늘같이.. 시 2018.06.26
여름/문경아제 하늘은 화끈 땅은 후끈 축 늘어진 나뭇가지는 하늘 올려다보며 투덜투덜 유월초닷세날 시집온 진자줏빛접시꽃 새댁은 덥단 말도 못하고 다소곳이 손부채질 바람 한줄기 불어온다 숨쉬기가 한결낫다. 시 2018.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