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이다1/문경아제 나는 시인이다 시인은 시인인데 시다운 시를 못쓰는 개떡같은 시인이다 140여 만 원의 보수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아파트경비원이지만 그렇게 배는 고프지 않다 개떡같은 시인이지만 그래도 시인이기 때문이다 "어이, 김 시인!" 길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부른다면 셋 중에 하나는 돌아본다.. 시 2018.05.06
나는 시인이다/문경아제 나는 시인이다. 시인은 시인인데 햇살 반짝 비치고 실개천 졸졸 흘러가는 살가운 풍광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맑디맑은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도 없다. 그래서 나는 시의 본향이라는 서정시를 못쓴다. 자유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위대하고 큰 가치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우리.. 시 2018.05.02
봄비5/문경아제 설쇠러 내려왔던 꼬맹이 손녀딸이 대문을 나서면서 막내삼촌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내겐 안 해주니?" 할머니가 그렇게 묻자 꼬맹이는, "언니한테 물어보고!" 라고 했다 애들은 애들을 좋아한다고 가수 정훈희가 말했다 봄비가 내린다 동그란 봄비가 내린다 학교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 시 2018.04.23
찔레꽃1/문경아제 동무걸 언덕배기 굽이길 모롱이에 피어난 꽃 찔레꽃 언고개 밭에 고추 따러가던 앞집 순이가 떨구고 간 마음일까 나는 영주로 순이는 서울로 떠나고 없는데 고향마을 동무걸 언덕배기 굽이길 모롱이엔 올봄도 하얗게 찔레꽃 피어났다. 시 2018.04.21
고물 자전거/문경아제 앞마당에 서있는 우리 집 고물 자전거 겉은 허름해도 속은 멀쩡하다 10호봉 고참자전거다 닳고 헤져서 발가락이 비어져 나온다고 하도 투덜거려서 뒷바퀴는 작년에 앞바퀴는 올해 새신발로 갈아 신겼더니 찍소리 없다 앞바퀴는 당기고 뒷바퀴는 밀고 휘파람 불고 콧노래 부르며 스리슬.. 시 2018.04.16
바람/문경아제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나부낀다 곱디고운 미풍 어여쁜 아가씨 바람이다 웬걸 바람은 이내 미쳐날뛰는 도깨비가 된다 간판이 날아가고 아파트 쓰레기장 지붕이 날아가고 나뭇고개 가로수 몇 그루를 도로 한복판에 내동댕이 치더니 바람은 기운이 빠져 소백산 비로사 뒤 골짝으로 숨어버.. 시 2018.04.12
풀/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 시 2018.04.12
징/문경아제 징이이잉 지이이이잉 날아간다 울면서 날아간다 바람 등에 업혀 징징 울며 날아간다 날개가 아픈가 목고개를 넘고 너분열동네를 지나 가실목고개를 넘어 너울너울 춤추며 삼천리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거라 나래에 힘빠지거든 청보리밭에 주절머리 앉아 다리쉼하고 가거라 시 2018.04.08
사월에 내리는 눈/문경아제 눈이 내린다 희뿌연 하늘에서 펄펄 눈이 내린다 낮술먹고 취하면 조상도 몰라본다 했는데 저 높은 곳에 사시는 하느님이 낮술한잔 하시고 단단히 취하셨나보다 당신께서 만들어 놓은 우주의 법칙을 당신 스스로 어기시는 것을 보니 아니다 사월의 눈은 뒤죽박죽 제멋대로 뒤엉켜 돌아가.. 시 2018.04.07
상념(想念)/문경아제 한잔의 술을 마시며 괴짜시인 김관식을 생각한다 삯지게에 얹혀가던 시인이 지게꾼에게 묻는다 "이놈아, 내가 무겁냐?" 지게꾼이 대답한다 "아니요. 한개도 안 무겁니더. 해깝하니더!" 지게꾼은 경상도사람이었나 보다 한잔술에 취해 눈을 감는다 하늘 같은 선배 시인 김관식을 생각한다 .. 시 2018.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