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쫓겨난다(밀입국한 새들에게)/문경아제 떼까치도 아닌 것이 산비둘기도 아닌 것이 왜그리 시끄럽냐 남의 땅에 살면, 좀 조용히 해라 뭐라고? 궁둥이 붙이고 살면 사는 곳이 내땅이라고! 야, 이자슥들아 歸化신고도 하지 않은 이자식들아 주민등록증 조사하기 전에 입닥쳐라 어라 날아가버렸네 사과 한마디없이 망할노무 자식들.. 시 2018.03.22
노년의 세월.1/문경아제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서 뚝방길 아래 언덕에 실례를 해버렸다 "에그, 할아버지!" 파란 별님이 내려다보며 생긋 웃는다 "밤인데 뭐, 실례좀 했기로서니 캄캄한 야행길, 일흔 넘은 노인 손목에 쇠고랑 채우겠소" 그대와 난 특혜받은 치외법권자 이땅의 바깥노인. 시 2018.03.21
옛벗/문경아제 까만 책보 어깨에 비스듬이, 허리에 질끈, 동여메고 등굣길 오 릿 길을 뜀박질하던 동무들아 얼굴에 마른 버즘 누렇게 피었지만 목소리 하나는 참 맑았던 곱디고운 동무들아 이 세상 어디에서 그 어떤 모습으로 살아간다해도 우린, 하늘이 맺어준 죽마지우 옛 동무였다. 시 2018.03.21
별이 사라졌다/문경아제 친구들과 얼려 저녁먹으며 희희낙락 막걸리 두어잔을 했다 탁배기 두어 잔에 기분이 알딸딸해진다 한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정은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별이 보인다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더니 세상에서 제일 곱고 아름다운 별, 우리집 천정에 떠있.. 시 2018.03.21
봄날1/문경아제 송골재 넘어가는 좁다란 오솔길에 빨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번드네동네 조총각과 송골동네 연희 처자는 사랑을 했다네요 조총각은 곰보였지요 연희 처자 집에서 사위로 들이기를 한사코 반대했지요 바람에 한잎 두잎 진달래꽃잎 떨어지던 날 젊은 두 연인은 함께 농약 나.. 시 2018.03.18
봄날/문경아제 희야, 갯버들가지 꺽어 삘리리 삘리리 버들피리 불던 까까머리 내 모습을 너는, 지금도 기억하느냐 희야, 연개산 중턱에 산비둘기 구성지게 울면 한올 한올 떨구던 진달래 꽃잎의 하얀 눈물을 너는, 지금도 기억하느냐 희야, 우윳가루 한 보자기 배급받아 오면서 한 움큼 입에 털어넣고 .. 시 2018.03.17
향수(鄕愁).1/문경아제 보리깜부기 따먹고 까맣게 변해버린 입술 서로 쳐다보며 깔깔대고 웃던 동무야 세월 저편으로 우리들 모습 사라졌다 해도 눈물 떨구지 말자 오늘이 가고 또 내일이 지나간다해도 우리 서러워 말자 그 옛날, 앞산 사모봉에 붉은 진달래 가득 피던 날 허기진 뱃속에 빨간 꽃잎 잔뜩 채우던 .. 시 2018.03.15
빛과 그림자/문경아제 연개산 골짝에 한잎 두잎 진달래 피던 날도 사모봉 그늘에선 구구새는 울어댔다 구구구구 계집죽고 구구구구 자식죽고 피토하며 흐느꼈다 씨룩씨룩 피이익! 가쁜 숨 몰아쉬며 목탄차는 그날도 목고개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 2018.03.13
불통/문경아제 답달할 땐 벽에다 대고 얘길한다 "아유, 숨막혀 죽겠다" 그래도 답답하면 파란 하늘 올려다보며 넋두릴 한다 "님아 님아 날버리고 어디로 갔소!" 시 2018.03.09
여진/박정대 문득 치어다본 하늘은 여진女眞의 가을이다 구름들은 많아서 어디로들 흘러간다 하늘엔 가끔 말발굽 같은 것들도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여진의 살내음새 불어온다 가을처럼 수염이 삐죽 돋아난 사내들 가랑잎처럼 거리를 떠돌다 호롱불, 꽃잎처럼 피어오는 밤이 오면 속수무책 구름.. 시 2018.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