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宿命)/문경아제 한잔술을 마신다 먹다남은 술병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매실나무 아래에 남은 술을 쏟아붓는다 빈병이 바람에 날아간다 한잔 두잔 석잔까진 마실 수 있다면 좋으련만 뱃속의 간과 위 창자가 손사래를 친다 더 이상 내려보내면 당신과는 한 하늘 아래에 같이 못산다고 협박을 한다 망할노.. 시 2018.04.06
천삼백 원의 행복/문경아제 집앞에 있는 24시편의점에 들려 막걸리 한병사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돌아온다 병을 거꾸로 치켜들고 태풍에 바닷물 뒤집히듯 뒤집히라고 마구 흔들어 댔다 캬아! 얼마만에 맛보는 막걸리 맛이랴 이 좋은 맛을 맨날맨날 못 보고 술잔속엔 하늘 같은 선배 괴짜 시.. 시 2018.04.06
봄비.3/문경아제 못을 이룬 달나라 항아님 눈물이 흐르고 흘러 넘쳐 땅으로 떨어져 내린 물 그게 바로, 빗물이라지요 어젯밤엔 달나라 항아님이 한없이 우셨나봅니다 봄비가 저리 쉼없이 내리는걸 보니 하얀 목련꽃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 맺히게 하려고 맘 고약한 봄빈 아침부터 저렇게 추절거리고 있답.. 시 2018.04.04
매화/문경아제 당신은 떠나가셨습니다 설운 모습 보이기 싫어 내가 곤하게 잠에 떨어진 새벽녘에 떠나가셨습니다 말없이 오시더니 가실때도 말없이 가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밤새워 쓰신 하얀 편지, '내년 봄에 다시 올게요!'를 남겨두고 떠나셨습니다 내년 봄 우리 집 대문 두드리며 생긋 웃으며 돌.. 시 2018.04.02
사월/문경아제 동무야 내 동무야 마흔 두 평 우리 집 하늘에서 하늘하늘 꽃비가 내린다 동무야 내 동무야 눈을 꼭 감아보아라 보이느냐 그 옛날 우리가 윗도리 벗어제치고 쌈하던 그 골목길에 떨어져내린 하얀 살구꽃잎이 들리느냐 안아주고 싶을만큼 사랑스럽던 어미소를 불러대던 우리 집 송아지의 .. 시 2018.04.01
매화/문경아제 그대 오심에 칙칙했던 우리 집 마당이 환해졌습니다 연분홍빛 미소 얼굴 가득 띄우고 당신은 우릴 찾아 오셨지요 말없이 오셨으니 가실 때도 말없이 가시련가요 저녁놀보다 더 고운 이별아닌 이별 남겨놓고 쌀쌀맞게 가시련가요. 시 2018.03.29
종소리/문경아제 땡 땡 땡그랑 때앵 아기예수 탄생을 알리는 성탄종소리는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사방팔방 날아갔습니다 강촌님, 늘봉 시인님, 하나님의 예쁜 딸 초희 시인님! 그대들의 귀에는 들렸을, 은은했던 성탄의 종소리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부활의 종소리도 하늘로 치솟을 텐.. 시 2018.03.25
산수유2/문경아제 오시는 듯 아니 오시는 듯 소리 없이 오시더니 미세먼지 잔뜩 낀 날에도 햇살 환한 날에도 노란 분 풀고 풀어 하늘 가득 채우신 당신 새벽 찬이슬 내리면 추워서 어쩌시려나 시 2018.03.24
불통.1/문경아제 배가 고프면 허기가 지고 잠 못자면 머리가 띵하다 소통이 안되면 푸른 하늘도 강물도 까맣게 보인다 절벽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절벽뿐이다 벽을 바라보고 깩 고함을 질러본다 벽은 듣고만 있지 않고 깩깩깩깩깩 몇배나 더 고함을 지런다 하늘이 노랗다. 시 2018.03.23
거듭나기/문경아제 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땅속을 기어다니는 땅강아지도, 지렁이도, 사랑해야지 햇볕을 싫어하는 아이들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땅강아지도, 지렁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맘 한 번 바꿔 먹으면 한 줄기 빛이 보이거늘 시 201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