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김동억 타고 내리는 사람 하나 없는 간이역 할아버지 할머니 사시는 시골집 같다 한때는 많이도 북적거렸는데 이제는 달려오는 기차도 지나쳐 가고 기적소리만 남긴듯 명절 때나 되어야 찾아 온 손주들 한바탕 떠들다가 휑하니 가고 나면 텅 빈 시골집도 찾는 이 하나 없는 간이역 할아버지 할.. 시 2018.01.12
사랑의 높이/문경아제 빨래줄 위에 옹기종기 참새새끼 앉아있다 어미 새 날아오자 파르르 날개 떤다 빙그레 웃으시며, "이제, 만판 지들도 벌거지 잡아먹을 수 있겠구만!" 할머니 얘기 바람결에 들려온다 날아오고 날아가고 또, 날아오고 날아가고 저러다 어미참새 날개 다 닳아 없어질라 어미참새 사랑 하늘 .. 시 2018.01.12
사모곡.1/문경아제 산과 들, 강물이 얼었습니다 하늘마저도 꽁꽁얼어붙어 실로폰 두드리듯 두드리면 "쨍그랑!" 소리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바깥에 10분만 서있어도 얼어죽을 것 같은 데 근 반시간을 쓰레기장에 머물다왔습니다 쓰레기분리하느라고요 숨소리가 들리니 소자 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오늘같.. 시 2018.01.11
대화(對話)/문경아제 밤하늘에 모래 한 움큼을 확 뿌려본다 모래는 별이 된다 별이 된 모래는 별로만 남아있지 않고 비둘기가 되고, 듬직한 바위가 되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되고, 어떤 별은 꼬리 팍 내리고 어슬렁거리고 걸어가는 누르스름한 멍구狗로 변하기도 한다 시인이 된 별이 말을 걸어온다 "내일밤에.. 시 2018.01.10
겨울나무/문경아제 잎 떨어진 앙상한 가지사이를 바람이 울며 지나간다 윙윙 윙윙 성난 바람이 앙칼지게 울어대며 뼛속까지 후벼판다 봄을 기다린다 바람에 온 몸 내어준 채 나목은 봄을 기다린다 초록 보리밭골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기다리며 나목은 장미빛 미소를 띄운다. 시 2018.01.10
옛 동무들/문경아제 파란 보리밭에 하얀 눈내린 날, 학교갔다 집으로 돌아오며 사진 박는다고 흰 눈밭에 벌렁 들어눕던 옛 동무들 다 어디로 갔을까 고동희, 홍돌이, 병호, 병우는 강 건너 밀밭 찾아 갔고 말용이와 병철이는 고향 지키며 살고 동식이는 보령 대천에, 창식이는 부산에, 종대는 경기도 부천에서.. 시 2018.01.10
겨울연가(戀歌)/문경아제 오늘같이 눈내리는 날이면 슬픈 추억 한 토막이 생각난다 고3때였다 섣달그믐 저녁이었다 더매마을, 물방앗간집 막내딸 여친의 오른손목을 그 나쁜 방앗간이 앗아가고 말았다 팔걷어부치고 가래떡을 빼며 방앗간 일을 도우던 여친의 오른손목을 그 몹쓸 피대줄이 휘감아 버렸다 손목은 .. 시 2018.01.08
할머니/문경아제 뒷산에선 쌩쌩 바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후후후후 후후새 울음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부엉부엉 앞산 사모봉에서는 부엉이가 음흉스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윗목에 떠놓은 자리끼 물이 꽁꽁 얼어버리는 추운 밤이었지만 당신곁에 꼭 붙어자는 잠자리는 따뜻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시 2018.01.06
망부작명(望夫鵲鳴)/문경아제 까치가 운다 잎사귀 다 떨어진 은행나무가지에 앉아 지아비 기다리며 암까치가 운다 까악 깍 저녁은 먹은는지 자고오면 자고온다고 전화라도 할 것이지 까악 깍 푸념배인 울음소리에 바람소리 포개진다 대기권 넘어 아스라이 머언 곳에서 별똥별이 유선을 그리며 지구의 품에 안긴다. 시 2017.12.23
포도나무를 태우며/허수경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에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랐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시 2017.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