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문경아제 바람이 인다 지구가 아직도 숨을 쉰다 머리를 감는다 거품을 뻑적지근하게 뿜어대며 머리를 감는다 머리카락이 빠진다 천금같은 내 머리칼 몇 올이 쏙쏙 빠져내린다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생명의 숨소리 들려오니까. 시 2017.08.16
보고싶다/문경아제 안 온다 방학이 됐는데도 안 내려온다 보고 싶은데, 참 보고 싶은데 안 내려온다 열한 살, 일곱 살, 우리 집 두 손녀딸이 내려오지 안는다. 큰놈은 예뻐서 사랑스럽고 막둥이는 떼쟁이라 사랑스럽고 왜 안올까? 하얗게 새어버린 할아버지 눈길은 오늘도 대문앞 서성이는데. 시 2017.08.15
부부.2/문경아제 남남으로 만났다가 촌수도 없이 무촌으로 사는 사이 걸어온 길 뒤돌아본다 사십오리, 짧지 않은 길 굽이길 산모퉁이에 피어있던 봄길, 진달래길 장대비 쏟아지던 여름길, 가을길엔 처연하게 낙엽 떨어져 내렸고, 겨울길엔 흰눈 소복히 쌓였었지 얼맘큼 될까? 남아있는 길을 가늠.. 시 2017.08.10
손녀딸.6/문경아제 한 놈은 열한 살 초등학교4학년 또 한 놈은 일곱 살 유치원2학년 큰 놈은 이쁜이 막둥이는 떼쟁이 힘들때 빙그레 웃음지으며 잠시 쉬었다가는 할아버지 쉼터 우리집 두 사랑이 방학이 되었는데 안 내려온다 눈이, 귀가, 대문밖을 서성인다 시 2017.08.10
사모곡/문경아제 김동한 요즘처럼 무덥던 날 중날산 아래 바위틈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시원한 굴물 주전자에 담아 조작조작 걸어오던 이 아들을 어머니,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차디찬 물 양푼에 담아 사카린 몇 알 넣어 휘휘 젓은 뒤 한 모금씩 마시며 환하게 웃어대던 우리들 얼굴에 피어났던 그 웃음꽃.. 시 2017.08.09
홀아비의 통곡/문경아제 김동한 해도 뜨지않은 꼭두새벽에 저산 비둘기 슬피운다 구구구구 계집죽고 구구구구 자식죽고 앞마당에 매어놓은 황소 죽고 구구구구 패가망신한 홀아비 비둘기 구구구구 구구구구 목놓아 운다 산도, 바람도, 따라운다 구구구구 구구구구 애절히 따라운다. 시 2017.08.08
질식/김혜순 그리하여 숨 그러자 숨 그다음엔 숨 이어서 숨 그래서 숨 그렇게 숨 그리고 숨 그대로 숨 그러다가 숨 그래서 숨 항상 숨 이윽고 숨 언제나 숨 그런데 숨 그러나 숨 그러므로 숨 그럼으로 불구하고 숨 끝끝내 숨 죽음은 숨 쉬고, 너는 꿈꾸었지만 이제 죽음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뗄 .. 시 2017.08.02
접시꽃 사랑.1 바람이 데려가진 않았겠지 희야 올 여름에도 진자줏빛 접시꽃은 곱게 곱게 피어났다 희야 진자줏빛 접시꽃보다 더 고운 너의 미소를 바람이 데려가진 않았겠지? 희야 그렇지 바람이 데려가진 않았지! 시 2017.07.02
헌 집/김윤배 바람이 혼자 산다 바람처럼 드나드는 그녀의 발소리도 말소리도 없다 바람을 먹고 사는 바람꽃이 찾아오는 날은 그녀를 떠나 있던 물 긷는 소리도 오고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온다 헌 집은 소리들, 미세한 소리들로 차고 기운다 후박나무 그림자가 더욱 길어지고 그녀는 후.. 시 2017.06.19
노욕(老慾)/문경아제 경상도 할배가 네 살배기 손녀딸 업고 둑길을 걸어가다 등에 업힌 손녀딸에게 묻는다 "우리 초롱이는 세상에서 누가 젤 좋노?" "엄마" "그 담엔?" "애기!" 할부지 얼굴은 붉그락 푸르락 "할부지는 안 좋나?" "할부지도 쬐끔 좋아" '에라 요 여시같은 놈' 햇님이 빙그레 웃으신다 시 201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