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오후/문경아제 그렇게 푸르던 하늘이 오후에 접어들자 회색구름으로 가득찼다 일흔 줄에 들고부터 옛 친구들이 하나 둘 앓아눕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뇌졸증으로 저친구는 척추협착증으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희미한 친구 목소리 "으어어 그래에..." 황혼 곱게 물들면 구름 걷히겠지. 시 2016.10.12
자화상/공광규 밥을 구하러 종각역에 내려서 청계천 건너 다동빌딩숲을 왔다갔다가 한 것이 이십 년이 넘었다 그러는 동안 내 얼굴도 도심의 흰 건물처럼 낡고 때가 끼었다 인사동 낙원동 밥집과 술집으로 광화문 찻집으로 이런 심심한 인생에 늘어난 것은 주름과 뱃살과 흰 머리카락이다 남의 비위를 .. 시 2016.10.01
구월(九月)의 시/함형수 하늘 끝없이 멀어지고 물 한없이 차지고 그 여인 고개 숙이고 수심(愁心)지는 구월(九月) 기러기 떼 하늘가에 사라지고 가을 잎 빛 없고 그 여인(女人)의 새하얀 얼굴 더욱 창백하다. 눈물 어리는 구월(九月) 구월의 풍경은 애처러운 한 편의 시(詩) 그 여인은 나의 가슴에 파묻혀 운다. 시 2016.09.29
저문 강가에서/강문희 저문 강가에서 너의 이름를 강물에 떠나보낸다 너무나 짧았던 나와 나의 인연의 매듭을 풀면서 흘리는 눈물은 이별의 슬픔 때문이 아니다 너의 이름 강물을 따라 덧없이 흩어지고 너를 보낸 강가에 무심히 눈 내리면 우리는 한 잔의 차를 마시며 프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 얘기.. 시 2016.09.08
별2/문경아제 구름 걷힌 밤하늘엔 별들이 촘촘히 떠있습니다. 갓난아기 때 하늘나라에 올라간 땅꼬마 동생이 그리워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장보따리 이고 목고개 고갯길 올라오시는 울 어메가 너무도 그리워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 막걸리 한 사발 드시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 시 2016.09.07
엇갈림/황연지 너는 과거로 흘러가고 나는 미래로 가고 있다 작은 점이 되어 만나지만 한순간뿐이다 어느새 우주만큼 멀어져 있다 찰나의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을 너는 알까 내가 아는 너는 과거이고 내가 가는 곳은 아득히 먼 미래이다. 시 2016.09.06
문/황연지 문이 고장났다. 나가야 하는 곳에 나갈 수 없고 들어가는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쉽게 상처받게 놔두고 미련하게 참으며 살았다 몸을 말아서 가만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그 무엇인가 문이 고장 났다. 시 2016.09.06
사우(思友)1/문경아제 안드르메다 은하 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별나라에 사는 친구야 자네가 살고 있는 그 이상한 나라에도 가을하늘은 저리 높니? 밤이면 풀숲에서 귀뚜라미 울고 구만 리 하늘에 기러기 떠가니? 물어나 마나 먹걸리는 있겠지 친구야, 요럴 땐 목이 칼칼할 요럴 땐 탁배기 한 잔 걸쳤으.. 시 2016.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