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기도/문경아제 우리 집 예쁜 두 손녀딸 무탈하게 쑥쑥 크게 해주소서 삼남매 내새끼들 노력한 만큼 결실보게 해주소서 고운맘 고운 몸짓으로 살아가게 해주소서 늙은 우리 내외 곱게곱게 살다 당신 찾아가게 해주소서 오늘 낮엔 목좋은 곳에 자리 차지하고 앉아 쓰리고에 양피박 씌워 저녁 칼국수는 내.. 시 2017.09.08
산다는 건/박상숙 산다는 건 어쩌면 저마다 가슴에 빈 우물을 파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 많은 사람들 속에 혼자가 되어 돌아오는 날 제 속 깊은 곳에 수장된 설운 것이거나 아픈 것이거나 외로움이거나 쓰라린 기억들 목밑까지 차올라 메아리를 그리는 날에도 차마 입으로 퍼올릴 수 없는 목마른 심.. 시 2017.09.06
아버지/문경아제 이 가을엔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텁텁했던 당신의 미소가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갈 마당 타작마당에서 막걸리 한 사발 벌컥버컥 마시고 파란 하늘 올려다보시며 싱긋 웃으시던 당신의 그 미소가 하얀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당신은 말년에 이 외아들을 무척 힘들게 하셨습니.. 시 2017.09.05
가을 소묘/함민복 고추씨 흔들리는 소리 한참만에 에취! 바싹 마른 고추가 바싹 마른 할머니를 움켜쥐는 소리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마당가 개도 취이! 마주 보는 주름살 다듬는 세월 시 2017.09.03
가을/문경아제 고운 하늘은 좋지만 아내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가녀린 한숨은 싫다 하늘하늘 춤추며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은 사랑스럽지만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가랑잎은 밉다 수년 전 노란 은행잎 떨어지던 날 우주선 타고 별나라 여행가서 돌아오지 않는 친구에게 전화해 물어봐야겠다 자네.. 시 2017.09.03
애물단지/문경아제 아빠는 잘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딸아이가 생각나서 빙그레 웃는다 딸아이 방을 들여다본다 비어있는 방을 들여다본다 "아빠요!" 날 부르는 목소린 들리는데 딸아인 없다 쌩하니 토라진 모습은 보이는데 딸아인 없다 가을 따사한 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이 가을에 딸아이가 서럽도록 보.. 시 2017.08.29
자화상/문경아제 추절추절 가을비 내리는 밤길을 우산 받고 슬렁슬렁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저 만큼 앞에 나와 꼭 같은 시커먼 사람이 자전거 타고 우산쓰고 간다 누굴까 세상에 나랑 꼭 같은 사람도 있나 아니다 등 뒤에 가로등이 만들어낸 내 그림자다 시 2017.08.28
비창/문경아제 구구구구 구구구구 앞산 비둘기가 운다 제작년엔 딸내미 죽고 작년에는 아내 죽고 역병으로 잃어버린 가솔 못잊어 야삼경 깊은밤에 목놓아운다 주룩주룩 비내리는 깊은 밤중에 이 산 저산 날아다니며 구슬피 운다 시 2017.08.23
박꽃2/문경아제 당신은 왜 밤에만 오시나요 낮에 오시면 발이라도 부르트나요 별님이 좋아서 밤에만 오시나요 매미소리 그치면 당신은 머언 남국으로 떠나가시겠죠 "내년 6월에 돌아올게요" 떠나실 때 손가락걸고 하실 그 말씀 믿으며 난 당신을 기다릴게요 풀색 치마에 하얀 무명저고리 입고 환하게 웃.. 시 2017.08.23
바램/문경아제 이젠 대문앞에 서성이는 내 눈길 거둬드려야겠다 진자줏빛 접시꽃보다 더 고운 내 눈길, 잡안으로 불러드려야겠다 방학이 다 끝나가는데 오지않는 손녀딸 기다리는 내 눈길 이제 그만 집안으로 불러드려야겠다 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맑고 밝게 건강하게 쑥쑥 자라만 다오 밤톨같은 우리.. 시 2017.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