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7. 9. 5. 14:23

이 가을엔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텁텁했던

당신의 미소가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갈 마당

타작마당에서

막걸리 한 사발

벌컥버컥 마시고

파란 하늘 올려다보시며

싱긋 웃으시던 당신의 그 미소가

하얀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당신은

말년에 이 외아들을 무척 힘들게 하셨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치매를 앓으시던 당신은

벽에 누런 분칠까지 하셨습니다.

어느해 정월대보름날 며느리가 드린 오곡밥이

적어셨는지

몰래 마냥 퍼잡수시고

바지에 설사를 한없이 하셨지요

 

정신이 멀쩡하시던 날

"그래도 병든 애비지만 없는 것 보다야 안낫겠나!"

하시던

당신의

그 말씀이

메아리되어 귓전에 울립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시니까요.

 

 

 

_시인의 변

아버지를 시제로 한 시는 보기가 참 힘듭니다.

어머니를 시제로한 시는 하고많은데 아버지를 시제로한 시는

별로 없습니다.

아버지는 외롭습니다. 자식들도 어머니는 찾지만 아버지는 잘 찾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든 아버지는 더 그렇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일 때가 많습니다.

나이들어 할아버지가 된 어버지의 낙 중하나는 손주들 재롱입니다. 스마트폰에 손주들이 전화라도 걸어올 때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친구들과 고스톱치다 쓰리고에 양피박 씌운 것 보다 더 신바람이 납니다.

별빛 내리는 가을하늘 올려다보며 할아버지가 나직이 두 손녀딸을 부릅니다.

"김신우, 김시우, 시인우우야아, 시이우우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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