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문경아제 엊그제는 훨훨 날아 오르내렸고 어제는 슬슬 걸어서 오르내렸다 오늘은 넘어질까봐 한 계단 또 한계단 세월없이 오르내렸다 연지볼이 고운 바람이 손을 잡아주었다 생긋 웃는 미소가 아침햇살보다 더 밝았다 시 2019.10.20
줄탁/이정록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시 2019.10.12
시인과 가을밤/문경아제 별 없는 밤하늘은 번뇌보다 더 무겁다 시인의 고뇌는 하늘과 맞닿았다 귀뚜리가 운다 우리 집 산당화나무뿌룽가지밑에 세들어 살고있는 귀또리가 귀똘귀똘 운다 셋돈 한푼 안받고 공짜로 살게해줘서 고맙다고 귀똘귀똘 귀또르르 운다 개짖는 소리들린다 전봇대 앞집 눈먼 아내와 함께 .. 시 2019.10.04
애노/문경아제 우리 집 옆집 옆집에 살고 있는 검둥개 애노가 짖는다 컹컹! 짖는다 밥값하려고 짖는다 점심은 건너뛰고 아침과 저녁밥 얻어먹는 밥값하려고 짖는다 애노가 운다 하늘 올려다보고 운다 푸른달빛내리는 한밤에도 울고 햇살 포근한 한낮에도 운다 어릴 적, 젖떨어지고 헤어진 어미 품속이 .. 시 2019.10.02
우물/문경아제 김동한 조그만 웅덩이만한 동그라미엔 지붕도 없었습니다 신바람나게 뛰어놀던 아이들은 목이 타는 듯했습니다 우루루 동그라미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첨벙! 양철통 두레박이 동그라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땀에 뒤범벅이 된 아이들 이마엔 땟국물이 주루루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두.. 시 2019.10.02
거미의 항변/문경아제 아침산책길에 나섰다 오르막길이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가쁜 숨을 고른다 물색없이 고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바보가 된다 뭉개구름은 하얀데 까만 거미 한 마리가 허공에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직업이라 버릴 수 없단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단.. 시 2019.09.29
가을편지/문경아제 희야, 갈햇살 포근한 이 아침에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선다 스리슬슬 자전거페달을 밟는다 급할 것 없느니 내 가슴속 풍차가 일러주는데로 자전거 바퀴는 굴러간다 서천둑길을 달린다. 갈대숲 사이사이로 새카맣게 썩은 강물이 숨죽이고 숨어있다 저 썩어버린 까만 강물속에서도 물고.. 시 2019.09.18
양파껍질 벗기기/문경아제 내눈 속 조리개에 하늘이 박혔다 오도가도 못하게 꿈쩍없이 박혔다 하늘 속엔 둠벙이 박혔다 까까머리 어릴 적, 목고개에서 신작로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산밑, 깎아 지른 듯한 낭떠러지 밑에 있는 우리 꼬맹이들이 첨벙첨벙 멱감던 둠벙이 거꾸러 박혔다 까르르 웃어제치는 까까머리 동.. 시 2019.09.17
새털구름 2/문경아제 겉보기엔 유유자적 속내는 꿍꿍이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점령군처럼 하늘을 다 덮었으리 겉다르고 속다른 위선자 두목 제비에겐 꿈쩍 못하는 나약자 하얀 새털구름 올려다보며 꿈 하나가 익어간다 빨간 꿈 하나가 익어간다 하늘을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두 날개의 고운꿈이 .. 시 2019.09.16
항변/문경아제 아내가 추석차례상에 올릴 장보기하러 시내, 번개시장에 간다기에 택시타고 가랬더니 택시요금 오천 원이 아깝다며 자전거를 태워달랜다 오늘따라 자전거가 땡땡이를 친다 앞바퀴는 당기고 뒷바퀴는 밀고 스리슬슬 잘도 굴러가던 자전거가 웬일이지 방자해졌다 두 바퀴가 입을 맞춰 숙.. 시 201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