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9. 18. 14:43

 

 

 

 

 

 

 

 

 

 

 

 

희야,

갈햇살 포근한 이 아침에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선다

스리슬슬 자전거페달을 밟는다

급할 것 없느니

내 가슴속 풍차가 일러주는데로 자전거 바퀴는 굴러간다

서천둑길을 달린다.

갈대숲 사이사이로 새카맣게 썩은 강물이 숨죽이고 숨어있다

저 썩어버린 까만 강물속에서도 물고기는 살아간다

한참을 달려가다 뒤돌아다보았더니 푸른빛을 되찾은 강물은 내뒤를 따라오고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도 푸르다

하늘이 푸른 것은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집이기때문이요

강물이 푸른빛을 되찾은 것은 버드나무뿌리와 물풀이 제할일을 다했기 때문이다

 

희야,

아름드리 버드나무숲길쉼터 벤치에 앉아

햇살 해맑은 이 가을아침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

학교앞 영강변에 서있던

저 버드나무보다 훨씬 우람한 세 그루 느티나무를

너도 기억하고 있겠지

우리가 올려다보며

나무 참 크다!라고 감탄을 했던 그 느티나무를

너도 잊지않고 있겠지

 

희야,

내가 군에서 제대하던 해,

너는 귀밑머리 까만,

들꽃같이 상큼한

열아홉 꽃띠아가씨였다

희야,

아직도 까말 너의 귓머리 가을서리에 젖지않게

조심하려무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물/문경아제 김동한  (0) 2019.10.02
거미의 항변/문경아제  (0) 2019.09.29
양파껍질 벗기기/문경아제  (0) 2019.09.17
새털구름 2/문경아제  (0) 2019.09.16
항변/문경아제  (0) 201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