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주연이/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12. 30. 21:42

 

 

 

 

 

  25여 년 전, 우리 옆집 경무네 집 옆방에 주연이라는 여덟 살짜리 꼬맹이가 살고 있었다. 동생은 여섯 살, 가연이라고 했다.

 주연이를 첨 만나던 날은 어느 늦은 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뒷문으로 나왔을까. 좁다란 뒤 안에서 놀던 주연이가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옥상으로 오르는 좁다란 계단은 아주 가파로웠다.여덟살 철부지 꼬맹이가 오르기엔 위험했다. 담 너머에서 주연이를 지켜보던 내가 소리를 질렀다. "이 녀석아, 올라가면 위험하다.내려가거라."

 근데, 고 맹랑한 녀석이 말은 듣지 않고 오히려 나를 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조그만 주먹을 둘러메는 게 아닌가. 기가막혔다

 '어라, 조 놈 봐라. 주먹을 둘러메면 지가 뭐 어쩔건데.한 번 해보자는 거여 뭐여.'

 

  그렇게 안면을 턴 녀석은 대문턱이 닳아빠지게 우리 집대문을 들락거렸다. 혼자 오기도 했지만 동생 가연이를 데리고 올 때도 많았다.

  놀러왔다가 배고프면 스스럼 없이 밥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은 잡아먹으라고 듣지않았다. 창틀에 기어올라가 커튼을 뒤집어쓰고 거실바닥으로 뛰어내리기 일쑤였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집사람에게 놀러온 경무 엄마는 집사람을 타박하곤 했다. "어마이도 성질도 참 이상타. 남의 집 아이를 뭘 그렇께까지 좋아하노. 정도껏 하지 않고!"

 주연네는 이여 년쯤 경무네 집에서 살다가 200여 미터 떨어진 아랫마을로 이사를 갔다.

 

 학원차를 타고 학원에 가던 주연이가 차창 밖으로 나를 보기라도 하면, "아저씨, 아저씨이!" 손을 흔들며 고함을 질러대며 반갑다고 야단법석을 떨곤했다.

 집사람을 만날때도 그 모양이라고 집사람이 말샜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내가 일흔을 넘긴 노인네 되었으니 주연이도 서른은 되었겠다.

 시집은 갔는지 모르겠다.

 그래, 주연아. 잘 살으려무나. 알콩달콩 잘 살으려무나.

 고운햇살처럼 밝게, 밝게 살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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