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눈물/문경아제 수일전에 산수유나무가 꽃을 피웠다. 꽃은 자고나니 피어있었다. 안쓰러웠다. 꽃을 피우긴 했는데 나무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작년 늦가을에 누군가가 전지를 했다. 심했다. 톱날을 너무 심하게 들이댔다. 이가지 저가지가 마구 짤려나간 나무는 앙상했다. 강전지를 해버린 것이었다. .. 수필 2018.03.26
벌들이 살판났다/문경아제 회양목꽃이 한창이다. 꽃에 벌들이 빼곡하다. 벌들의 향연이 벌어졌다. 노란 바람을 일으키며 붕붕되며 날아댄다. 생 난리법석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양 날개 밑에 팥알만큼한 꽃가루뭉치를 달고 다닌다. 부지런한 벌! 벌은 개미와 함께 집단생활을 하는 곤충이다. 분업과 협업을 철두.. 수필 2018.03.23
할머니 기일1/문경아제 오늘은 음, 이월초닷세 할머니 기일이 드는 날이다. 집사람은 어제낮에 시장에 들려 장보기를 해왔다고 한다. 옛 어른들 중 편히 사신분이 과연 얼만큼 될까. 모르긴해도 극소수의 선택된 자들 뿐일 것이다. 우리집 할머니도 평생 호강 한 번 해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말년엔 지병인 .. 수필 2018.03.21
딸아이/문경아제 언제부턴가 근무날 밤이면 101동 끝자락 철망 앞에 붙어서서 부영아파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멀리에서 바라보는 불빛, 부영아파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아련했다. 낮이 양陽이라면 밤은 음陰이다. 낮이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시간이라면 밤은 안식安息과 그리.. 수필 2018.03.21
새들의 합창/문경아제 "갔다올게!" 5시 30분, 잠깨어 누워있는 집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굴다리지하보도를 지나고 궁전맨션을 돌아 남산초등학교 뒤를 자전거는 달려간다. 큰길을 건너 뛴 자전거는 선사유적지先史遺跡地 앞에 다다른다. "호르르르, 찌루루우, 띠띠삐이, 쪼로로.. 수필 2018.03.14
마중물/문경아제 초저녁, 집사람이 마트에 다녀오자고 했다. 저녁먹고나면 귀찮아서 꿈쩍도 하기 싫을테니 아주 저녁먹기전에 다녀오자고 했다. 자전거를 끌고 집사람을 따라나섰다. 우리내외는 다혈질이라 눈만 마주치면 쌈하지만 길나서면 아주 다정하다. 집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두런두런 얘기나누.. 수필 2018.03.13
배가 고프다/문경아제 점심먹고 40여 분 휴식한 후, 쉼없이 일했더니 기진맥진이다. 자전거방에 들려 튜브와 타이어를 동시에 교환했더니 3만원이라고 했다. 지갑에 들어있던 구렁이알 같은 내돈 3만 원이 그만 축나 버렸다.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만 9년동안 날 태우고 다닌 자전거다. 새 신발 갈아신기는데 들.. 수필 2018.03.08
에너지/문경아제 어릴적, 골목대장노릇을 하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랫담에 서너살쯤 적은 종구라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골목길에서 한데 어울려 놀던 종구가 말했다. "차는, '오라이' 힘으로 간대이!" 종구의 말이 떨어지자말자 동무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오라이(all right)' 는 일본식 조어造語다. .. 수필 2018.03.07
삼일절1/문경아제 오늘은 제99회 삼일절三一節이다. 지금으로부터 99년 전, 기미년己未年인 1919년 3월 1일에 삼일운동三一運動은 일어났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식민지였다. 그날 무궁화 피고지는 이땅 금수강산, 삼천리 곳곳에는 맨손에 태극기 쥐고 온겨레 하나되어 만세를 불.. 수필 2018.03.01
골목길/문경아제 애노가 짖는다. "컹, 컹!" 애노가 짖는다. 애노는 두 집 건너에 살고있는 이웃집 개다. 원조 애노는 작년 여름에 집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하늘나라로 올라갔고 지금 짖는 개는 이대 애노다. 우리 동네 아침은 개짖는 소리로부터 열린다. 주택가 골목길이란 아이들 우는 소리, 쌈하는 소리.. 수필 20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