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귀천 초혼은 지나가는 바람이 불렀겠지 스리슬쩍 흙을 파 무덤 하나를 썼다. 봉분도 없는 자그만 평분이다 무덤 앞에 그 흔한 사과 한 알, 배 한 알도 없이 막걸리 두 잔도 올리지 못하고 치장의 예를 마쳤다 그래도 망자여! 서운해 마오 그대는 구만리장천을 훨훨 날아다니며 살다간 자.. 시 2016.01.17
4월의 눈/김옥순 하늘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무한 공간 휘이휘이 날아 드디어 내려앉는 가장 낮은 자리 무수한 발길에 채이기도 전 찰나에 사라지는 4월의 눈은 안쓰럽다. 잊혀진 사랑처럼 허망하다. 시 2016.01.15
고부의 대화/오유경 치렁치렁 달린 요상한 물건들. 방울방울 떨어지는 닝겔. 버텨보지만 이내 축축해진 아랫도리. 소리 없이 작아지는 내 몸뚱아리. 시린 발위로 덮혀지는 부드러운 이불. 눈꼽을 걷어내는 촉촉한 가재수건. 벌린 압속을 찾아오는 호사스런 커피한숟가락. 똑똑똑 끊겨지는 길어져 못.. 시 2016.01.15
별을 헤다 외로울 땐, 별을 헤어보세요. 그 무엇이 애타게 그리울 때도 별을 헤어보세요. 서럽거나 괴로울 때에도 별을, 별을 헤어보세요. 밤하늘에 떠있는 빨갛고, 파랗고, 노란 별님들은 뻥뚫린 그대의 가슴을 포근한 손길로 살포시 어루만져 줄테니까요. 시 2016.01.09
연못/두루에 권경자 흐르고 싶었다 흐르고 흘러서 시냇물과 손잡고 흐르고 흘러서 강물과 더불어 마침내 그곳에 닿고 싶었다 산다는 게 맘대로 되진 않는다던데 그 열망 겹겹이 쌓여 썩고 썩어서 이윽고 고요해져 너 연꽃을 피어낼 수 있다면 내 썩은 내음 너의 향기로 퍼질 수 있다면 그것은 흐르지 .. 시 2016.01.07
어디로 갔을까/동시 오르락내리락 나무 잘타고 졸랑졸랑 장단 맞춰가며 내 뒤를 쫓아 다니던 잿빛알록이 새끼고양이 어디로 갔을까? 쓰레기장에 일하는 날 찾아와 바짓가랑이에 살랑살랑 스킨쉽하던 잿빛달옥이 아기고양이 어디로 갔을까? 엄마따라 살기좋다는 큰마을로 이사갔을까? 설마 우주선 타고 별.. 시 2016.01.03
바닷가에서/정진채 파도가 밀려간 바위틈 소라게가 집을 업고 놀러 나왔다 동그란 처마 밑으로 빨갛고 예쁜 발이 햇빛에 반짝인다 이 넓은 바다의 한쪽에 요렇게 작은 소라게가 용하게 살고 있다 바다의 한 식구 소라게가. 시 2015.12.18
눈/문경아제 한 밤에 내리는 눈은 연인들 밀어이다 아침에 내리는 눈은 떼쟁이 우리 집 손녀딸이다 한 낮에 내리는 눈은 부산스런 아낙네 모습으로 온다 저녁때 내리는 눈은 동구 밖 들어서는 울 어메 함박웃음으로 찾아온다. 시 2015.12.16
시 인천의 천재시인 김영승은 이렇게 말했다. "시는, 돌을 한 줌 집어 허공중에 확, 뿌려서, 만든, 별자리, 같다는, 생각." '밤하늘에 모래 한 움큼을 뿌린다 모래는 별이 된다 별이 된 모래는 별로만 남아있지 읺고 비둘기가 되고, 듬직한 바위가 되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된다' .. 시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