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문경아제 밤 하늘에 모래 한 움큼을 확 뿌려본다 모래는 별이 된다 별이 된 모래는 별로만 남아있지 않고 비둘기가 되고, 듬직한 바위가 되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된다 시인이 된 별이 말을 걸어온다 우리 내일밤에 꽃동산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 합세 올려다보고 대답을 한다 그래! 자네 두 잔, .. 시 2015.10.15
별/문경아제 아내 잔소리는 내 발 뒷꿈치에 묻어 다닌다 손 잘 씻어라 옷 아무데나 벗어놓지마라 문 살짝 닫아라 서천 강변 모래알 보다 더 많은 아내 잔소리 엉뚱한 생각하며 자전거 타고가다 그만 꽈당 하고 넘어졌다 산도깨비처럼 옷에 착 달라 붙은 아내잔소리 들린다 "에그, 또 한눈 팔았구려!" 시 2015.10.11
천상병 시인1/문경아제 웃는 모습이 꼭 아이 같았던 당신 막걸리 두 되 담배 한 갑으로 한 생을 살다가신 빈털털이 당신 눈 한번 깜박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천상에서도 서울 부산 천릿길 그 먼 길을 흥얼흥얼 노래하며 오가실 당신. (2015.4.12.) 시 2015.10.08
다시 태어나도/문경아제 여보시오, 벗님! 우리 다시 태어나도 내외로 만납시다. 그땐 우리, 삼신할머니께 막걸리 몇 잔 받아드리고 지금처럼 아프다 소리 입에 달고 살아가는 약골이 아닌 튼튼한 강골(彊骨)로 만납시다. 노래 잘 하는 당신은 카펜트즈의 카렌처럼 노래 부르고 나는 당신 곁에서 시 쓰고 우리 집 .. 시 2015.10.08
아픈 하이힐/문경아제 벗은 하이힐 왼손에 거머지고 스마트폰 오른쪽 귀에 바싹대고 사박사박 걸어가는 백수 아가씨 오른 쪽 어깨엔 일상의 고달픔이 담긴 큼직한 파란 가방이 메여있다 살색 스타킹 뒤 꿈지엔 콩알만 한 숨구멍 뚫였는데 좀 전에 보고 나온 면접은 통과했을까? 시 2015.10.08
낙엽/문경아제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가지와 인연이 다했기 때문이다 바람의 손끝에 따라 푸르던 잎 갈잎되어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경쾌한 왈츠를 추며 팽그르르 돌며 떨어지고 토셀리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사뿐사뿐 떨어진다 늦은 밤 달빛 가득히 안고 떨어지는 은행잎은 귀뚜라미의 연인인가. 시 2015.10.05
모정/최남주 메밀밭 하얀 꽃이 잠들어 고요한데 업은 아기 칭얼거려 낮달이 된 아머니 박 넝쿨 고운 박은 보름달로 밝아 오고 박속 긁는 숟가락엔 소리 없는 눈물. 시 2015.09.24
가을의 변고/예주 김영숙 가을은 외로운 계절 멀쩡한 사람 마음 흔들어 지는 낙엽도 부는 바람도 그러하고 일없이 눈물나게 하니 어인 변고? 이 가슴 이별은 사랑보다도 아파라. 시 2015.09.24
목고개에 서서(산문시)/문경아제 옛날 옛적, 목고개 초입(初入)엔 주막이 한 채 있었다는데 도깨비 등살을 견디다 못해 큰 마을 어귀로 이사를 했다네. 새색시 태우고 열두 굽이 고갯길, 목고개를 넘어가던 가마가 벼랑끝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꽃가마 타고 시집가던 곱디고운 색시는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숨지고 말.. 시 2015.09.23
혼돈/문경아제 국격 낮은 나라 백성은 유죄 술 취한 듯 판결봉 삐딱하게 쥐고 땅 땅 땅 두드려 대는 판사는 무죄 전후좌우 아래 위 살펴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흘러가는 강물은 유죄 유월, 뙤약볕 아래 길섶에 피어난 계절 잃은 한 송이, 자줏빛 코스모스도 유죄 미필적 고의 저질러 놓고 까르르 웃는 .. 시 201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