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고개에 서서(산문시)/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9. 23. 10:40

옛날 옛적, 목고개 초입(初入)엔 주막이 한 채 있었다는데 도깨비 등살을 견디다 못해 큰 마을 어귀로 이사를 했다네.

새색태우고 열두 굽이 고갯길, 목고개를 넘어가던 가마가 벼랑끝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꽃가마 타고 시집가던

곱디고운 색시는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숨지고 말았다네.

심통스럽고 애달픈 얘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고향마을에 전설되어 흐른다.

영주, 집에 가려고 목고개에 서서 점촌행 버스를 기다린다.

어림잡아 나온지라 간이정류장 벽에 붙은 시간표를 보니 버스가 올 시간은 아직 반 시간이나 남아있다.

무료한 김에 눈 감고, 가로수에 기대서서 목고개에 얽혀있는 옛 추억을 더듬어 본다. 어릴 적 목고개 마루엔 작은아버지가

부역나와서 심어셨다는 미루나무가 도로 한 켠에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었고,

그 미류나무 꼭대기엔 여름날이면 하얀 모시옷을 맷시있게 차려입은 뭉게구름이 오도 가도 못하게 걸려있기도 했다.

열여덟 악동시절 어느 여름밤에 동무들과 고개 마루 목 좋은 데 누워 혹시 시비 걸만한 놈 지나가지 않나하고 기다리다가

대추영감이라고 소문난 읍내 지서주임에게 걸려 된통 혼쭐난 일들이 빛바랜 사진첩속의 흑백사진 마냥 잊어버리기 서러운 추억으로 잡힌다.

"번쩍번쩍 우르르 꽝!" 먹장 같은 하늘에선 금방 비라도 쏟아질 양 기세 한 번 등등하다. 이런 날엔 고갯마루에 심심찮게 나타나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어온다는 전설속의 도깨비, 그 도깨비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

요술 잘 부린다는 환상속의 도깨비 만나 걸쭉한 막걸리 한 잔 나누며 인생살이 푸념 좀 늘어놓고 싶다.

사람은 잘 보이지 않고 기계가 판을 치는 21세기 디저텰 시대, 세월 따라 변했을 도깨비 모습 한 번 쯤 보고 싶다.

아마도 21세기 현대판 도깨비는 오늘같이 무더운 여름날엔 분명, 시원한 모시옷 입고 다닐게다. 휴대폰 꺼내들고 친구에게 오늘밤엔,

동네 앞 구멍가게 시원한 들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켄맥 한 통 하자고 전화할게다.

엉뚱하게 변했을 도깨비 모습 상상해 보며 실없는 웃음 한 번 웃어본다.

착하거나 약한 사람은 도와주지만 지독히 인색하고 잘 난체 하는 사람은 반드시 골려주고, 손익계산 어눌하지만

한 번 신뢰하면 배반할 줄 모른다는 전설속의 아름다운 도깨비! 그 도깨비가 기룹다.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버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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