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문경아제 찬비 싫어서 메밀묵 장수의 외침소리도 어디론가 숨어든 밤 푸르던 잎 낙엽으로 보내버린 느티나무 가지에 밤비가 내린다 1자 두 개가 나란히 겹쳐진 밤 초소문을 잠그고 퇴근을 한다 결비실 앞을 돌아가는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소리 "빗길 미끄러우니 조심하구려!" 누군가 하고 .. 시 2015.09.20
휴경지/문경아제 땅이 묵는다 멧골 다랑눈이 묵고 산골짝 비탈밭이 묵는다 임자 없는 무덤가 등 굽은 소나무가지엔 눈먼 부엉이가 청승맞게 울어댄다 자그만 서너 평의 땅 우리들 마음속에 터잡고 살아가던 그 아름다웠던 땅이 나무도, 풀도, 땅강아지도, 지렁이도, 살아가지 못하는 휴경지가 되었다 너.. 시 2015.09.18
연애대위법/문경아제 파란 초가을 하늘아래 이상한 쌍엽기 두 대가 에어쇼를 벌이고 있다 다섯 살배기 우리 집 막내손녀딸 새끼손가락만큼 예쁜 동체에 두 쌍의 날개를 단 빨간 경비행기와 큰 손녀딸 가운데 손가락처럼 날씬한 암갈색 기체(機體)에 검정색 망사날개를 얹은 경비행기가 한데 어우러져 연출하.. 시 2015.09.17
상생/문경아제 전후좌우 아래위로 날렵하게 날아다니며 남의 집 곳간 털어가는 떼강도들 붕붕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도적질에 혼을 뺏긴 백주대낮 간 큰 무뢰배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던가 곳간 텅텅 비었는데 꽃들의 미소가 저리 화사한 걸 보면 강도떼에게 얻은 것도 많은 모양. (2014.4,15.) 시 2015.09.15
목고개/문경아제 눈 감으면 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고개 잠 못 이루는 까만 밤엔 눈 감고 달려가 쉬었다 오는 고개 젊은 날의 때 묻지 않은 내 영혼이 하얀 낮달 되어 흐르는 고개 죽어서도 참하 못잊을 몹쓸 놈의 고개. (2014.12.31) 시 2015.09.15
어머니2/문경아제 밤하늘엔 별들이 촘촘히 떠있습니다. 빠알간 아기별, 파아란 누나별, 샛노란 엄마별, 커다란 주황색 아버지별들로 빼곡히 들어찬 밤하늘엔 조약돌 한 알 올려놓을 자리도 없습니다. 앞산 위 동쪽 하늘엔 빛이 바래진 할머니별이 허리가 잔뜩 굽은 채 지팡이 짚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습니.. 시 2015.09.15
시인은/문경아제 서산에 핀 빨간 저녁놀에 찔끔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나뭇 고개 마루 위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매서운 풍기바람 못 내려오게 두 팔 벌리고 서있는 돈키호테다 담 밑에 앉아있는 길고양이 보고 어이, 춥지? 하고 말 걸어 보는 사람이다 시 2015.05.30
고물상 노트북 다리는 덜렁덜렁 앞 마당 자전거는 삐걱삐걱 내 무릎은 새큼새큼 집사람 걸음걸이는 잘쑥잘쑥 "에그, 내가 못살아 가스렌지도, 전자렌지도, 세탁기도, 사람도, 마캉 고물 다 됐네!" 거실을 가로지르는 아내 볼멘 소리 귓등에 쟁쟁 시 2015.05.28
사우(思友) 사우(思友) -전우홍 친구에게 친구야 우리 재 너머 청산가자 막걸리 한 됫박 너랑 나랑 나눠 마시고 흰나비 뒤를 쫒아 훨훨 날아 청산가자 친구야 우리 앞 벌 강에 가자 강가 모래밭에 큰대자로 드러누워 파란 하늘 올려다보며 버들피리 불어보자 삘릴리 삘릴리 버들피리 불어보자. 시 2015.05.26
박꽃 소년이 태어나던 날밤 소년의 집 초가지붕위엔 하얀 박꽃이 피었습니다 청년으로 자라난 소년이 장가가던 날밤 소년의 집 마루에는 곱디고운 청사초롱이 걸렸습니다 꽃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할아버지 가슴에 하얀 박꽃이 피었습니다 그 옛날 소년이 태어나던 날 밤처럼 하얀 박꽃이 피.. 시 201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