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문경아제 김동한 소년이 태어나던 날밤 소년의 집 초가지붕위엔 하얀 박꽃이 피었습니다 청년으로 자라난 소년이 장가가던 날밤 소년의 집 마루에는 곱디고운 청사초롱이 걸렸습니다 꽃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할아버지 가슴에 그 옛날 소년이 태어나던 날 밤처럼 하얀 박꽃이 피었습니다 예쁜 두 손녀딸.. 시 2015.11.14
동행.2/문경아제 마주보고 돌아눕고 또, 마주보고 돌아눕고 꽃길, 봄길 장대비 쏟아지던 여름길 단풍잎 고왔던 처연했던 가을길 하얀 눈 내리던 아늑했던 겨울길 새기손가락 걸어본다 이제, 남은 길일랑 토닥거리지 말고 웃으며 걸어가자고. 시 2015.11.13
까치밥/문경아제 감나무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빨간 감 몇 알 해마다 감 딸 때면 감나무 올려다 보시며, '대여섯 개는 남겨 두어야지!' 그렇게 중얼대며 씨익 웃던 할아버지 감 딸 때가 되었건만 빙긋 웃던 그 얼굴 보이지 않네 등너머 친구 찾아 놀러가셨나. 시 2015.11.13
모정/재야시인 최남주 메밀밭 하얀꽃이 잠들어 고요한데 업은 아기 칭얼거려 낮달이 된 어머니 박 넝쿨 고운 박은 보름달로 밝아 오고 박 속 긁는 숟가락엔 소라 없는 눈물. 시 2015.11.06
그 보릿고개/김희영 아귀도 맞지 않는 부엌문 가만히 열리면 밤새 오락가락하던 쥐새끼만 멀쩡히 아침안부를 한다 대소쿠리는 언제나 궁색함으로 묵직하고 간장물 한 사발로 속을 들이키니 배고픔은 속에서 잠잠히 죽어간다 타닥타닥 아궁이 불씨만 가난 태우듯 온기를 붙들고 무딘 칼날 호박하나 깎을 수 .. 시 2015.11.06
어느 하루/김정애 사노라면 가지런히 놓인 징검다리 같은 나날 중 하루만은 건너고 싶지 않는 그런 날 있다 시랑하던 사람과 기약 없는 이별 쓸쓸히 뒷모습 바라보고 돌아 와 두 눈에 흘러내리는 눈물 한 번 세월 속으로 흘러 가 버리면 두 번 다시 되 돌아오지 않는 금쪽 같은 시간마저도 싫어지는 울적한 .. 시 2015.11.02
야삼경(夜三更)/문경아제 김동한 두런두런 속닥속닥 까만 밤 아래 나란히 누운 두 여정(旅情) 귀뚜리 울음따라 밤은 깊어 가는데 무에 그리 우서운지 허허허 호호호호 까만 밤 지새우네 어둠속의 두 여정. 시 2015.10.31
자화상/문경아제 김동한 외줄기 바람이었나 소나기 지나간 강 언덕에 서서 장대비의 울음을 기억해 본다 저녁노을은 붉게붉게 타오르는데 시 한줄 낚기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겨울, 보리밭을 덮고 있는 새하얀 눈은 울 어머니 품속 같겠지. 시 2015.10.31
산수유/문경아제 김동한 꿈이 익었다 빨간 진주되어 알알이 익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님들은 아실까 반짝이는 갈햇살과 은빛 구름도 알고 있을까 저 동그란 항아리 안에 담겨진 빠알간 꿈을. 시 2015.10.31
우물/최영신 무너진 고향집 흙담 곁에 고요로 멈추어선 우물 속을 들여다본다. 물을 퍼올리다 두레박 줄이 끊긴 자리, 우물 둘레는 황망히 뒤엉킨 잡초로 무성하다.그 오래 올려지 고 내려지다 시신경이 눌린 곳, 깜깜한 어둠만 가득 고여 지루한 여름을 휑구어낸다. 하품이 포물선처럼 그려졌다 사라.. 시 201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