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문경아제 희야, 갈햇살 포근한 이 아침에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선다 스리슬슬 자전거페달을 밟는다 급할 것 없느니 내 가슴속 풍차가 일러주는데로 자전거 바퀴는 굴러간다 서천둑길을 달린다. 갈대숲 사이사이로 새카맣게 썩은 강물이 숨죽이고 숨어있다 저 썩어버린 까만 강물속에서도 물고.. 시 2019.09.18
양파껍질 벗기기/문경아제 내눈 속 조리개에 하늘이 박혔다 오도가도 못하게 꿈쩍없이 박혔다 하늘 속엔 둠벙이 박혔다 까까머리 어릴 적, 목고개에서 신작로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산밑, 깎아 지른 듯한 낭떠러지 밑에 있는 우리 꼬맹이들이 첨벙첨벙 멱감던 둠벙이 거꾸러 박혔다 까르르 웃어제치는 까까머리 동.. 시 2019.09.17
오줌찔개/문경아제 아침 산책길에 나설 땐, 이따금씩 영주교회 로비에 있는 커피자판기에서 커피한잔을 뽑아먹곤한다. 오늘아침에도 여뉘날처럼 커피한잔을 뽑아서 훌쩍훌쩍 마셔댔다. 빈 종이컵을 버릴려고 자판기에 다가서는데 저쯤에 오줌찔개 한마리가 보인다. 수컷이었다. 암컷보다 덩치가 훨씬 작.. 일상이야기 2019.09.17
새털구름 2/문경아제 겉보기엔 유유자적 속내는 꿍꿍이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점령군처럼 하늘을 다 덮었으리 겉다르고 속다른 위선자 두목 제비에겐 꿈쩍 못하는 나약자 하얀 새털구름 올려다보며 꿈 하나가 익어간다 빨간 꿈 하나가 익어간다 하늘을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두 날개의 고운꿈이 .. 시 2019.09.16
다람쥐/문경아제 우리 집 꼬마 다람쥐는 팔딱팔딱 뛰어다니며 잘논다. 퀵보드를 타고 달릴땐 바람같이 빠르다. 추석을 쇠고 꼬마 다람쥐는 저네 집이 있는 경기도 의왕으로 올라갔다. 조금전에 집사람이 말했다. "꼬맹이가 요걸 냉장고에 숨겨놓고 잊어버리고 안 가져갔네." 집사람 손에는 길쭉한 과자 한.. 일상이야기 2019.09.14
추석전야/문경아제 밤열한시 오십여 분, 집사람은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고있다. 차례준비로 며느리 다그치며 온종일 고생한 집사람이 늦은 밤인데도 주방을 떠날 줄 모른다. 안쓰럽다. 손님같은 며느린 손녀딸 데리고 잠이든 것 같고. 깜냥껏 시어미를 도왔겠지만 며느린 아직 많이 어눌해보인다. 그래, 시.. 일상이야기 2019.09.13
숨은 그림찾기2/문경아제 고모는 이쁜데 할머니는 안 이뻐 얼굴이 쭈글쭈글해서 할머니는 안 이뻐 손녀딸 맹랑한 입이 엉덩이에 매를 번다 네살배기 땅꼬마도 일흔 살 할머니도 이뻐다는 말끝에 어깨가 우쭐한데 그 속내 숨은 그림을 꼬맹이가 어찌 알꼬 밥주세요 할머니 배고파요 할머니 배 쏘오옥 내밀고 밥달.. 시조 2019.09.12
운수 좋은 날/문경아제 길가다가 우연히, 예기치 않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평소 정겹게 지냈던, 가까운 이웃을 만날 땐 반갑기 그지없다. 오늘 오전 열한시쯤 기차역 가는 길에서 늘봄이네 외할머닐 만났다. "어머, 안녕하세요." "늘봄이네 외할머니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이네요. 잘지내셨죠." 우린 반갑게 인.. 일상이야기 2019.09.12
기차역 대합실/문경아제 무료할 땐 이따금 기차역을 찾아간다. 만남과 헤어지는 가슴짠한 모습을 만나보기 위해 기차역을 찾아간다. 눈어린 한낮에도, 초승달 떠있는 초사흘밤에도, 방랑병이 도지면 그렇게 기차역을 찾아 간다. 예천으로, 안동으로, 멀리 청량리로 저마다의 목적지를 찾아 사람들은 떠나가곤했.. 길따라 물따라 2019.09.12
항변/문경아제 아내가 추석차례상에 올릴 장보기하러 시내, 번개시장에 간다기에 택시타고 가랬더니 택시요금 오천 원이 아깝다며 자전거를 태워달랜다 오늘따라 자전거가 땡땡이를 친다 앞바퀴는 당기고 뒷바퀴는 밀고 스리슬슬 잘도 굴러가던 자전거가 웬일이지 방자해졌다 두 바퀴가 입을 맞춰 숙.. 시 201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