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2/문경아제 방 한쪽에 둔/할머니 빨간 지갑 일곱 살배기 손녀딸이/만지작만지작 "왜?"/ "아빠지갑에도 엄마지갑에도,/돈 없어요!" 할머니가 건네주시는/ 천 원짜리 한 장 받아들고 손녀딸은 동네 구멍가게로/ 나풀나풀 할머니 가슴속엔/보슬비 보슬보슬. 문경아제의 동시「빈 지갑」 우리는 지금 풍요.. 수필 2015.09.17
연애대위법/문경아제 파란 초가을 하늘아래 이상한 쌍엽기 두 대가 에어쇼를 벌이고 있다 다섯 살배기 우리 집 막내손녀딸 새끼손가락만큼 예쁜 동체에 두 쌍의 날개를 단 빨간 경비행기와 큰 손녀딸 가운데 손가락처럼 날씬한 암갈색 기체(機體)에 검정색 망사날개를 얹은 경비행기가 한데 어우러져 연출하.. 시 2015.09.17
오누이/문경아제 김동한 오빠는 오학년 졸랑졸랑 노란 가방 꼬맹이 누이는 유치원 새싹반 오빠는 파란 운동화 동생은 빨간 구두 오누이 손 맞잡고 걸어간 길엔 파란 발자국 빨간 발자국 가지런히 찍혔다. (2013.11.16.) 동시 2015.09.17
닮은 꼴/문경아제 김동한 50cc스쿠터와 우리 집 일곱살 짜리 손녀딸 노란 입은 꼭 닮은 사촌이다 앵앵거리며 스쿠터가 달리면 통통하게 생겨먹은 까만 머풀러에서 퐁퐁퐁 하얀 연기 새어나오고 손녀딸 조그만 입 참새같이 조잘대면 솜사탕 뽀얀 연기 몰씬몰씬 흩어진다. (2014.1.15.) 동시 2015.09.17
씨동무/문경아제 김동한 한 평도 안 되는 조그만 꽃밭에 읹은뱅이 채송화, 노란 키다리 유월국화, 궁둥이 비비고 들어앉은 하얀 정구지꽃, 새빨간 봉숭아가 가지런히 피어났다 꽃들이 입모우고 합창을 한다 얘들아! 우리 내년 여름에도, 저 내년 여름에도, 또 저저 내년 여름에도, 예쁜 꽃 함께 피우며 씨동무하자.. 동시 2015.09.17
흔적/문경아제 김동한 하얀 눈 속에 파아란 보릿싹들이 서로 등기대고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학교갔다 돌아오는 개구쟁이들 흰 눈밭에 드러누워 "찰칵!" 사진 한 장씩 박고 책보 어깨에 비스듬히 둘러매고 집으로 냅다 달음박질친다. 아이들은 저 멀리 달아났는데 눈밭 어디에서 재잘대는 소리 들려온다. "저녁.. 동시 2015.09.17
상생/문경아제 전후좌우 아래위로 날렵하게 날아다니며 남의 집 곳간 털어가는 떼강도들 붕붕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도적질에 혼을 뺏긴 백주대낮 간 큰 무뢰배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던가 곳간 텅텅 비었는데 꽃들의 미소가 저리 화사한 걸 보면 강도떼에게 얻은 것도 많은 모양. (2014.4,15.) 시 2015.09.15
목고개/문경아제 눈 감으면 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고개 잠 못 이루는 까만 밤엔 눈 감고 달려가 쉬었다 오는 고개 젊은 날의 때 묻지 않은 내 영혼이 하얀 낮달 되어 흐르는 고개 죽어서도 참하 못잊을 몹쓸 놈의 고개. (2014.12.31) 시 2015.09.15
어머니2/문경아제 밤하늘엔 별들이 촘촘히 떠있습니다. 빠알간 아기별, 파아란 누나별, 샛노란 엄마별, 커다란 주황색 아버지별들로 빼곡히 들어찬 밤하늘엔 조약돌 한 알 올려놓을 자리도 없습니다. 앞산 위 동쪽 하늘엔 빛이 바래진 할머니별이 허리가 잔뜩 굽은 채 지팡이 짚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습니.. 시 201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