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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문경아제

파란 하늘 아래 서있는 전신주에 수많은 줄들이 엉켜있습니다. 유선 줄 같아 보입니다. 전신주에 트랜스가 당당하게 앉아있습니다.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것 같습니다. 여름 하늘의 풍류객 하얀 뭉게구름 님이 어디로 가실까요? 동서남북 당신 맘 내키시는 데로 가시겠지요. 엊그제 아침 아홉 시 반쯤 코 꼴만 한 우리 집 마당에서 올려다본 영주의 하늘입니다. '코 꼴만 하다'는 '아주 조그마하다'를 뜻하는 경상도 문경 지방 사투리입니다. 영주에서 45년째를 살아가고 있지만 고향 사투리는 버리지 못합니다. 입에 배였거던요. 올해 여름은 오십여 일이나 지속된 장맛비 속에 엄벙덤벙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그리 더위도 못 느꼈지요. 지루한 장마 끝에 맑고 밝은 햇살을 만나니 무척 반갑습니다. 송대관의 노래, ..

일상이야기 2020.08.15

참나리꽃

학유정(鶴遊亭) 가는 길에 참나리꽃이 피어났다. 곱다. 참 곱다. 옛날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 내동무 동식이네 집, 담 밑에도 해마다 이맘때면 저리 고운 참나리꽃이 피어나곤 했다. 우린, 참나리꽃을 '호래이 꽃'이라고 불렀다. 호래이 꽃은 참나리꽃의 경상도 문경 지방 사투리다. 또 '호래이'는 호랑이의 사투리다. 고향마을에서 함께 자랐던 동식이는 탄광에 오랫동안 근무를 해왔다. 그 친군 발파 면허를 가지고 있는 화약관리 전문가였다. 10여 년 전, 동식이가 공사현장에서 발파를 하다 날아온 돌에 얼굴을 맞아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입원 치료를 받고 한동안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요즘에 들어서서 아주 말이 어눌해졌다. 전화를 걸면 이런저런 성인병으로 비실되는 내게 "친구야, 너는 건강하지!"라고 한다. "..

미니 픽션 2020.07.13

접시꽃을 만나다/문경아제

수년 전부터 이맘때면 연정을 나눴던 연분홍빛 접시꽃을 만나보려고 며칠 동안 홈플러스 뒷골목을 헤맸지만 허탕만 치고 말았다. 길눈이 어둡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그 화사한 연분홍빛 접시꽃을 만났다. 꽃은 늘 있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길눈이 어두운 내가 쉬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헤어진 첫사랑 고운 님을 만난 듯이 반가웠다. "찰칵찰칵!" 폰의 셔터를 눌러 제쳤다. 곱게 나와야 할 텐데.

길따라 물따라 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