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817

부부싸움/문경아제

싸웠다. 한판 제대로 붙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식탁에 앉았다. 어제 낮에 떡방앗간에서 해온 쑥떡 절편이 아침밥으로 올라왔다. 먹기 거북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프라이팬에 좀 데워서 올렸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먹었다. 근데 함께 나온 우유도 싸늘했다. 아침이다. 노인네가 마시는 물은 따뜻해야 몸에 부담이 없다고 한다. 봄이라지만 아침은 서늘했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싶었다. 집사람에게 말했다. 전자렌지에 좀 데워달라고. 남편이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얘기였다. 그런데 집사람은 "깨액!" 소릴 질러댔다. 못 마실 정도로 차가운 것도 아닌데 사람 귀찮게 한다고. 그래서 제대로 한판 붙어버렸다. 우리부부는 예나 지금이나 잘 싸운다. 나는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싸움은 반드시 집사람에게 ..

일상이야기 2020.05.10

불장난/문경아제

30년이 훨씬 넘은 옛날 얘기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황종우라는 직장 후배가 살고 있었다. 그 친구에겐 다섯 살 난 이름이 윤우라는 개구쟁이 사내아이가 있었다. 봄날이었다. 서천둔치 언덕길을 따라 어느 양봉업자가 가지런히 벌통을 내다 놓았다. 근데 고 맹랑한 윤우녀석이 비슷한 또래 놈과 얼려 바싹 마른 잔디밭에 불을 싸지르고 말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불길에 부채질을 해댔다. 봄 불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잔디밭을 까맣게 태우고 불길은 잡혔다. 벌통안 벌들은 타 죽거나 연기에 질식되었고, 약삭빠른 놈들은 잽싸게 도망질을 해서 목숨을 구했다. 그 친군 그일로 양봉업자에게 30만 원을 배상했다.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이태원 발 코비디 19가 나라 이곳저곳에 도깨비불을 싸지르고 ..

길따라 물따라 20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