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퀴로 낙엽을 긁어 모은다.
간밤에 내린 된서리에 감나무 잎이 폭삭 삼겨버렸다. 울긋불긋 단풍도 들지 못하고 감나무 잎사귀는 그렇게 된서리를 맞고 말았다.
된서리를 맞고 떨어진 감잎을 긁어 모은다. 긁어 낸 감잎을 소쿠리에 담아 크다란 푸대에 쑤셔 넣는다. 감잎은 꽤나 무거웠다.하기야 마르지도 않은 잎사귀이고 보니 무거울만도 했다.
불행이었다. 울긋불긋 오색으로 물들지 못하고 가지와 이별한 것이 불행이었다. 하기여 그것이 어찌 잎사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던가. 자연의 섭리를 한낱 잎새가 어찌 하겠는가?
어릴 적, 옆 집 명화네 집 마당 앞에 서있었던 둥시감나무는 아주 컸다. 늦은 가을이면 감나무잎사귀는 울긋불긋 오색으로 곱게 물들었다. 명화에게는 두 살 더 먹은 '쪼치미'라는 누나가 있었다. 내가 명화보다는 한살 위니 쪼미미도 나보다 한 살 더 먹었다.
우리들 꼬맹이는 명화네 집 마당에 수북히 떨어진 감나무 단풍잎을 가지고 놀곤 했다. 차고차곡 포개진 단풍잎을 열 장씩 묶어서 돈으로 사용했다. 단풍잎 돈으로 연필도 사고 공책도 샀다. 그 달콤한 눈깔사탕도 사먹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일 년 놀때였다. 초여름이었다. 보릿단을 나를려고 지게를 지고 건들배기 밭으로 가던 중이었다. 길에서 쪼치미를 만났다. 그때 쪼치미네 집은 너불연에 있었다. 쪼치미네는 내가 초등학교6학년 때 너불연으로 이사를 갔었다.
쪼치미는 까만 타이트에 하얀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있었다. 긴 생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왔다.쪼치미는 열아홉 살 아가씨로 변해 있었다. 쪼치미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밭에 가아?"
"그래, 보릿단 지러. 어데 새터동네 가남."
"그래에 갑순이 만나보려고. "
쪼치미는 또박또박 서울말을 썼다. 아마도 학교 졸업하고 서울 어딘가에 취직을 한 모양이었다.
쪼치미는 새터동네로 올라가고 나는 터털터덜 밭으로 내려갔다.
제대를 하던 해, '쪼치미가 어느 이발사에게 시집을 갔다' 라는 얘기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잎이 죄다 떨어진 감나무를 쳐다본다. 잎떨어진 감나무엔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까불까불 하던 꼬마 아가씨 치치미 얼굴에 열아홉 살 쪼치미 얼굴이 크로즈 업 되어 겹쳐진다.
이젠 쪼치미 아니 금정순이도 일흔 한 살 할머니 되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