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동네에서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불당골이라는 산동네가 있었다. 옹가지골은 불당골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서쪽 산 기슭에 있었다.
옹가지골에는 외딴 집이 한 채 있었다. 정서분네 집이었다.
키가 작은 서분이는 아주 또록또록 했다. 내가 초등학교6학년이었을때 서분이는 5학년이었다. 야무진 서분이는 공부도 잘했고 노래와 무용, 연극도 잘했다.
중학교3학년 때 이었을 것이다 . 추석날이었다. 열 다섯 살 초짜 아가씨 서분이가 큰 마을인 우리 동네에 놀러라도 오는지 물도 내려가지 않는 앞도랑을 가로 질러오고 있었다.
앞도랑은 건천(乾川)이었다. 여름날 장맛비가 내려야 앞도랑엔 물이 흐르곤 했다.
서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 있었다. 물색고운 한복으로 제대로 치장한 서분이는 예쁜 인형 같았다. 쫑쫑 땋은 기다란 머리끝에 갑사댕기를 드리우고 맵씨있게 치마저고리를 입고 종종종 걸어가는 서분이의 앙증스런 모습은 영락없는 인형이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서분이네 집이 구랑리로 이사를 갔다. 그 후론 인형같은 서분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50년이 넘어버린 아득한 옛날 얘기다. 흐르는 세월 속에 나는 일흔살의 노인네가 되었다.
인형처럼 생겨먹은 서분이도 늙었을까! 그 인형 같은 서분이에겐 세월이 비켜 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사, 세상사엔 예외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