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그 시절 그 노래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9. 4. 14:48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비단 물결 남실남실 어깨 춤추고

머리 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켜며

달밤에 소금쟁이 맴을 돈단다

 

기지바들은 노래를 부르며 팔딱팔딱 뛰면서 고무줄놀이를 했다. '기지바' 는 '계집아이' 의 경상도 문경지방 사투리다. 그렇게 재미나게 기지바들이 놀면 그 꼴을 보지 못하는 머슴아들 몇이가 조그만 면도칼로 고무줄을 싹뚝 짤라서 손에 움켜쥐고 달아나곤 했다.

기지바들은 고무줄놀이를 할때 '이순신 장군 노래'도 곧잘 불렀다.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 무리를

거북선 앞세우고 무찌르시어

이 겨레 구원하신 이순신장군

우리도 그의 뒤를 따려렵니다

 

또 이런 노래도 불렀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와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기지바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는 노랫말이 경쾌하거나 교훈적인 곡들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깡충깡충 고무줄을 뛰어넘는 기지바들은 너불연 냇물처럼 맑고 발랄했다.

초등학교 동기생인 기지바에게 이따금 전화를 넣곤 한다.

"어이, 춘자야! 나 영주, 동한이 잘있었나?"

"동하이가아. 내사마 잘있다만 그래 건강은 좀 어떠노. 노미는?"

노미는 우리 집 안사람이다. 세상에 일흔이 넘은 남녀가 서로 야자하는 것은 초등학교동기생밖에 없을 것이다. 집사람과 나는 초등학교동기동창이다.

"동한아, 니 왜 고무줄할때 고물줄 끊고 내뺐노?"

"재미있어서 그랬다 아이가. 니는 왜 김동하이 삘구다리 마른 명태 하면서 놀리고 도망쳤노?"

"나도 재미있어서 그랬다. 왜?"

"기지바 니 죽을래!"

"김동하이 삘구다리. 김동하이 마른 명태. 약오르지. 삘구다리."

우리는 하하하 웃어버렸다.

후덥지근하다. 늦더위가 찾아 온다더니 거짓말은 아닌가 보다. 하늘이 무척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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