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세월과 아이들/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11. 16. 12:28

"끼이익!"

귀청을 찢어버릴듯한 마찰음을 일어키며 택시가 급정거를 한다.

"이 노무 자식아가 죽을라고 환장했나." 운전석에서 내린 기사아저씨가 정호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러댄다. 어른이라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

앞도, 옆도, 살피지 않고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내려오는 정호의 세발자전거를 발견한 택시기사가 그렇게 차를 멈춰 세웠다.

기사아저씨가 호통을 치자 정호는 꽁지빠지게 도망을 가버린다.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들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지만 정호는 정도가 좀 심했다. 정호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한다하는 개구장이다.

아무리 그렇다치더라도 오늘일은 정호가 많이 잘못했다. 그냥 있으면 안될 것 같다. '엄마에게 알려 정호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라'고 일러주는게 도리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호네 집으로 전화를 했다."따르릉따르릉!" 신호가 갔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정호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호 엄마, 정호가 사고 쳤어요. 경비실로 좀 와 봐요."

"예에?"

"정호가 사고 쳤다니까요."

호출을 받은 정호 엄마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왜요? 아저씨!"

"정호 오늘 클날뻔 했어요. 자동차하고 키스할뻔 했다니까요."

"아저씨 고마워요.이노무 자식 집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정호엄마는 열이나서 빨개진 얼굴로 개구장이 아들을 잔뜩 벼러면서 경비실 문을 나섰다.

그날 저녁, 모르긴 해도 정호는 엄마에게 된통 당했을 것이다. 이 노무 자식 메롱이다.

 

"아저씨, 아저씨는 경비 하는 게 꿈이었어요?"

졸랑졸랑 따라오던 송아가 그렇게 종알댔다."

"그래, 아저씨는 경비 하는 게 꿈이었다. 근데 니 꿈은 뭐꼬?"

"저는요오. 법관도 하고 싶고 수학자도 하고 싶어요!"

"그러냐, 니는 꿈이 커서 참 좋겠구나."

"예."

송아는 초등학교3학년이다.

 

3초소에서 1초소로 내려오던 그해 가을이었다. 11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초소 앞 외곽도로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호를 만났다. 그때 정호는 초등학교5학년이었다. 

"아저씨, 잠깐만요."

그렇게 얘기를 하며 정호는 마트로 뛰어갔다. 그런데 마트를 나오는 정호의 손에는 켄 커피 한 통이 쥐어져있었다. 

"아저씨, 이거요!"

'세월 마이 갔꼬만' 그렇게 궁시랑거리며 물끄러미 정호를 바라보았다.

커피는 따사했다. "그래, 정호야. 잘 마실게."

너풀너풀 걸어가는 정호의 뒷모습이 퍽 대견스러워 보였다.

 

금요일, 초저녁이었다. 땅거미가 깔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뒤를 따라오며 인사를 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등 뒤에서 상큼한 소리가 들려왔다.

"예, 안녕하세요."

"송아요."

송아였다. 상큼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송아였다.

"송아구나. 집에 다니러 오는구나."

"예, 아저씨."

송아는 대구에 있는 영진전문대 학생이었다. 금요일, 집에 오는 모양이었다. 열 살짜리 꼬맹이가 어느새 저렇게 예쁜 새내기 여대생으로 자라났다니.

"송아가 참 예쁘게 자랐구나. 우리 송아,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 내보내도 되겠다."

"아저씨도 차암. 담에 뵈요.아저씨!"

"오냐 그래, 이 담에 보자구나."

송아는 103동으로 올라가고 나는 터덜터덜 쓰레기장으로 걸어갔다.

송아네 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송아, 그렇게 세 식구가 도란도란 살아갔다. 그랬는데 내가 2초소로 올라간 다음 다음해에 송아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송아네 집 식구는 할아버지와 송아 그렇게 두 식구로 줄어들었다. 송아 할아버지, 김경진 어르신은 향교의 전교를 역임하셨다. 송아 할아버지는 유림에서도 알아주는 그런 선비어른이시다.

 

아이들이 물씬 자랐다. 몰라볼만큼 자라났다. 정호가 중3, 송아가 스무 살 대학1학이라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세월은 정호를 듬직한 중3소년으로, 송아를 예쁜 여대생으로 키워놓았다.

 '저 녀석들이 언제, 저렇게 컸지!'

아이들을 만날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처음, 아파트에 일하러 왔을 때 쉰아홉이던 내가 어느새 일흔줄에 접어들었다.

처음 일하러 왔을 때만 해도 발이 어깨 너머로 휙휙 올라갔다. 몸이 굳어질까봐 꾸준히 기본발차기는 수련했다. 그러나 세월은 공으로 흐르지 않았다. 12여 년이란 세월은 나를 폭삭 늙은 노인네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마냥 잃은 것만은 아니었다. 흘러간 세월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열 살, 여섯 살, 사랑스런 두 손녀딸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시인과 동시를 쓰는 아동문학가, 스토리텔링 작가로 거듭 난 것도 노년의 수확이었다.

 

아이들을 듬직하게, 사랑스럽게, 잘 키워주신 정호 부모님과 송아 할아버지 아름다운 세월에게, '감사합니대이' 하고 꾸벅 절이라도 드리고 싶다. 하늘이 참 맑고 푸르다.

'미니 픽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1  (0) 2017.01.12
부부싸움  (0) 2016.11.30
빼빼로의 날  (0) 2016.11.12
그 시절 그 노래  (0) 2016.09.04
반전(反轉)  (0) 2016.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