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세월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2. 24. 10:39

1971년 군에서 제대를 하던 그해 가을, 농암에 사는 죽마고우 기용이가 장가를 갔다.

그 시절은 사는 게 다 고만고만 했었다. 변변한 예식장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군소재지인 점촌읍에는 예식장이 딱 하나가 있다고 했다.

마을 앞에 성당 공소가 있었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 집회장소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공소는 건물이 아주 훌륭했다. 그래서인지 결혼식 때 예식장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기용이 결혼식도 우리 동네 공소에서 했다. 그 때에는 예식절차에 축사와 답사가 있었다. 축사와 답사는 신랑신부 친구들이 했다.

기용이 장가갈 때 축사는 내가했고 답사는 신부 친구인 김정자라는 아가씨가 했다. 나는 정장차림이었고 그 아가씨는 까만 치마에 하얀 저고리 차림이었다. 길게 땋은 머리에 갑사댕기를 드리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난 어느 날 영숙이 아지매가 말했다.

"정자가 소개시켜 달라고 하던데." 영숙이 아지매는 답사를 한 김정자 아가씨 친구가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무렵에 지금의 아내와 교제를 하고 있었다. 영숙이 아지매의 말에 그냥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45년이 흘러가 버린 까마득히 멀어져간 옛날 얘기다. 나도, 찬구 가용이도, 이미 일흔줄에 접어들었다. 그때의 그 아가씨 김정자 씨도 이젠 예순 여섯 알곱은 되었으리라. 아마도 지금쯤은 그 어느 하늘 아래에서 손녀 손자 그리워 하며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옛날 일 떠올리며 얼굴에 연분홍밫 미소 한번 지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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