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소설

설야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6. 1. 29. 15:10

간밤에 눈이내렸다. 함박눈이 아닌 좁쌀 같은 눈이 밤새 내렸다.

치우면 내리고 다시 치우면 또 내렸다. 밤 10시 퇴근시간이 넘어서도 눈은 그렇게 오락가락 계속 내렸다. 11시쯤에 쓰레기를 버리고 댁으로 올라가시는 양용희 사모님을 만났다.

"사모님! 왜 눈은 밤을 그렇게 좋아 할까요?"

"그러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그 무슨 사연이 있지 않을까요?"

"소백산에 내리는 눈은 하얀 눈, 우리 아파트마당에 내리는 눈은 까만 눈이지요."

"왜지요?"

"아파트마당에 내리는 눈은 저를 힘들게 하니까요."

"눈이 오시면 힘드시지요? 문경아제!"

"예, 힘이 좀 들긴 합니다."

"젊은 날엔 눈이 내리면 낭만적이었는데 나이 드니 그런 운치도 사라졌네요. 그래도 눈은 오셔야겠지요."

"그럼요. 내가 힘들다고 눈이 안 내리면 안 되지요. 영주는 저 소백산 꼭대기에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봄 가뭄이 안 들거든요."

얘기를 나누시던 사모님이 댁으로 올라 가시자 나는 경비실로 들어왔다.

어젯밤엔 그렇게 눈과 씨름을 하며 염화카슘 다섯 포를 뿌렸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깜박했는데 깨어보니 4시였다. 밖에 나가보니 눈이 또 다시 소복이 쌓였다. 지하주차장 진입로와 마을 입구에 재탕으로 염화칼슘을 살포하고 인도 쓸고 쓰레기장 정리하니 5시 반이 훌쩍 넘었다.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기진맥진이다. 이렇게 철야근무를 하는 날은 몇 푼이라도 수당좀 지급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일꾼에 대한 배려일 것이고, 맑은 소리 내며 우리 곁으로 불어오는 하늬바람 일게다. 치자가 가져야할 한 덕목도 되리라.

초소문을 잠그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은 아참에 퇴근하는 남자가 되었다. 볼품없는 집이지만 그래도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단는 게 그 얼마나 좋은가!

눈이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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