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소설

사랑의 곁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12. 2. 16:42

 독자님들의 요청에 의해 동화, '사랑의 곁'을 제블로그에 올립니다.

 동화, '사랑의 곁'은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한 제2회일상생활수기공모전에서 장려상으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필력에 비해 과분한 상을 받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문학 앞에, 독자 앞에, 한 없이 겸허한 글쟁이가 되겠습니다. 소외받고 외로운 이웃을 아우러는 그런 문인이 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님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동화

 

            사랑의 곁

 

                                                         문경아제 김동한

 

 쓰레기집하장에 갔을 때 사모님은 누구를 기다리시는 듯 했습니다. 저를 만나신 사모님은 무척 반가운 표정이셨습니다.

 "어머, 문경아제! 일찍 나오셨네요."

 "예, 사모님! 이 시간쯤이면 늘 나옵니다만..."

 "문경아제, 어쩌죠. 여기 고양이가 한 마리 죽어있어요." 사모님이 얘기하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사모님 차 뒤쪽에 까만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있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차에 친 듯 했습니다. 땅바닥에 피 자국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러셨구나. 사모님은 죽은 고양이 때문에 이 시간쯤이면 늘 쓰레기장에 나오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사모님은 죽은 새끼고양이를 지키고 서계셨구나.'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사모님! 창고에 가서 삽을 가져와 저 새끼고양이를 묻어줄게요. 그러니 사모님은 댁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창고에 가서 삽을 가져왔습니다. 사모님은 그때까지 댁으로 올라가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사모님! 이제 그만 댁으로 들어가십시오. 저 새끼고양이는 화단 한 쪽에 고이 묻어주겠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사모님은, "아뇨, 저 죽어버린 어린 고양이를 묻어주는 문경아제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개의치 마시고 저  새끼고양이 좀 묻어주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사모님은 옴짝달싹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서계셨습니다.

 좁다란 화단 뒤쪽에 터를 잡고 땅을 자반쯤 팠습니다. 그런 다음 죽은 새끼고양이를 구덩이에 넣고 신문지 한 장을 포개어 덮은 후 흙을 던져넣었습니다. 이런 아침에 치러진 조객과 일꾼밖에 없는 까만 새끼고양이의 장례식은 그렇게 조촐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래, 까만 새끼고양아! 다음 생에 또 고양이로 태어날 땐, 좀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게 저 푸른 하늘님께 부탁좀 드려보렴.'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문경아제! 고생 많이 하셨어요. 고맙습니다." 하고 사모님이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뭘요. 식전에 운동 좀 했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그렇게 사모님의 인사를 받으며 밤사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정리하려는데 사모님이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경비일을 하시다보면 우리가 모르는 별스런 일을 다 겪게 되지요?"

 "예, 더러더러 그럴 때가 있기도 합니다. 저 새끼고양이 얘기좀 들려드릴까요?"

 "예. 들려주세요. 저 새끼고양이의 애잔한 얘기를, 아름다운 얘기를,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그렇게 부탁을 하시는 사모님께 저는 '세 마리 새끼고양이' 에 얽혀있는 아름답고도 애잔한 얘기를 들려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끼고양이는 조금 전에 별나라 가버린 녀석과 함께 모두 세 마리였지요. 가엾게 죽어버린 그 녀석과 또 한 녀석은 아주 새카만 빛깔이고 나머지 한 녀석은 누르스름한 색깔이랍니다. 새끼고양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9월14일이었습니다. 날씬한 까만 어미 고양이가 갓 낳은 듯한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어디론가 옮기고 있었습니다. 새끼는 아마도 9월12일쯤에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어미 고양이가 무척 고생을 했겠네요."

 "그럼요. 세 마리 새끼를 안전한 보금자리까지 옮기느라고 어미가 무척 고생을 했겠지요."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어디에 낳았던가요?"

 "관리실 올라가는 계단 밑에 낳았던 모양입니다. 기사실에서 얘기를 했습니다. 이층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어미고양이는 새끼를 물고 달아나다가 차가 나타나면 새끼를 그 자리에 놓고 피했다가 차가 가버리면 다시 돌아와서 새끼를 물어가곤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더니 아파트 뒤 후미진 곳으로 사라진 어미고양이는 사람들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보금자리를 옮겨버린 후론 새끼고양이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아파트 뒤 일층베란다 어느 곳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을 테지요. 그랬던 어미고양이가 새끼들이 웬만큼 자라나자 사람들에게 선을 보였습니다. '우리 아이들 잘 컸지요!' 그렇게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어미고양이는 40여 일만에 새끼들을 데리고 아파트 마당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모님! 어미고양이가 육아일기를 썼다면 책 한 권쯤은 되겠지요?"

 "그럼요. 문경아제.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식 키우기는 매일반이까요. 그 정도쯤 되게 새끼들을 기르느라고 어미고양이가 고생 꽤나 했을 테지요. 그 숱한 얘기 다 풀어서 육아일기를 엮었다면 모르긴 해도 책 한 권은 넘지 않았을까요? 저 같은 아녀자는 자식을 낳아 길러봐서 자식에 대한 어미의 모정을 잘 안답니다. 문경아제가 말씀하시는 그 날씬한 어미고양이의 새끼 사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문경아제, 고양이들이 말썽을 많이 부리지요?"

 "그럼요. 쓰레기봉지 다 뜯어놓고 참으로 사고를 많이 치지요."

 "그런 고양이들이 때려주고 싶을만큼 밉상스럽지요?"

 "예, 그랬지요. 새내기 경비원이었을 땐 그랬었지요. 사고를 치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쫓아서 빗자루를 꼬나 잡고 따라가곤 했으니까요. 달아난 고양이가 자동차 밑으로 숨어비리면 화가 나서 빈 맥주깡통을 차 밑으로 던지곤 했었답니다. 그런데 한 해 두해 이력이 쌓여가고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생각을 바꿔먹게 되었습니다. '저 녀석들도 먹고 살려고 저러는 걸' 하며 들었던 빗자루를 슬그머니 내려놓곤 했습니다."

 "예, 그러셨군요." 그렇게 얘기를 하시는 사모님은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생긋이 웃어셨습니다. 그 무슨 재미난 이야기라도 들으신 듯이 그렇게 웃으셨습니다.

 "언제 사모님이 다니시는 동부교회 한 번 들리고 싶습니다. 윤종오 목사님께서 사목하시는 모습도, 예배드리는 사모님의 고운 모습도, 폰에 담아 제블로그에 올리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지요?사모님!"

 "그럼요. 문경아제가 오신다면 언제나 환영이지요. 가토릭 신자이신 문경아제나 개신교 신도인 저희들이나 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종이니까요. 서로 방법만 다를 뿐 추구하는 길은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사모님, 예전엔 왜 그렇게 서로를 비방하고 아옹다옹 했을까요? 그 무슨 화해하지 못할 원수라도 진 사람들처럼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를 헐뜯기만 했을까요?"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요. '내가 가는 길은 옳고 당신이 걸어가는 길은 잘못된 길이다!' 라는 외통수만 고집해서 그랬을 테지요."

 댁으로 돌아가시는 사모님은 10여 년 전, 처음 뵈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왔습니다. 수년 전, 편찮으신 시아버님을 부축해서 차에 태우시고 병원에 가셨을 때나 지금이나 사모님의 뒷 모습은 한결같이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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