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나는,
국영기업체 징수원을 했습니다.
1975년 12월부터 하기시작한 그 노릇을 1992년 7월까지 했습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지긋지긋한 징수원생활을 자그마치 16년 8개월이나 했습니다.
1971년 3월, 난 육군 사병으로 만기전역했습니다. 전역을 하고난 뒤,
문경지방공무원이 되어보려고 공채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착실하게 공부한 결과 그해 10월에 있었던 공채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다음해인 1972년 5월 16일, 문경군 마성면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생활은 만만찮았습니다.
공무원이란 직업은 자유분방한 생활을 꿈꿨던 나에겐 족쇄였습니다.
역마살이 있는 나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직업이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나는 그해 12월까지도 기다리지 못하고 9월엔가 사표를 던져버렸습니다.
내자리에는 임시직을 앉히고 면에서는 상사와 동료직원이 복귀하라고 종용을 했습니다.
사표는 그해 12월엔가 수리됐습니다.
그 좋은 자리 면서기를 거더찬 아들을 아버지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온갖 구박을 했습니다.
당신의 욕구를 대리충족시켜준 아들을 아버지는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렇게 쫓겨난 뒤 먹고 살려고 국영기업체 징수원이 되었습니다.
스물아홉에 고향땅 문경을 떠나 영주에 왔으니 영주땅에 발붙이고 살아온지도 올 12월이면 만 44년입니다.
그러니 이젠 영주사람 다 됐지요.
어젯밤 꿈에 국영기업체 동료였던 병하 형님과 현충진 친구를 만났습니다.
병하 형님은 열한 살 연상, 직장 선배였고 충진씨는 한 살 위인 친구입니다.
꿈이란 게 그렇지요. 상황설정과 구성이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앞도, 뒤도 없는 모순덩어리가 꿈이지요.
봉현면 노좌1리 버스 간이정류장 같았습니다.
봉현면이 구역이 아닌 병하형님과 충진이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분명 노좌간이버스정류장인데 주변엔 고층빌딩이 즐비했습니다.
근데 길가 간이 정류장엔 웬 40대 중반의 여인이 날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오랜시간을 기다린 듯했습니다.
적당한 키의 여인은 연초록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오드리햅번처럼 짧은 숏컷을 한 그 여인은 상당한 미인이었습니다.
여인이 날 기다리고 있는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수금을 하려 자기 친정집에 들렸던 내가 그녀 어머니께 잘해줬다나요. 뭘 잘해줬는지 모르지만요.
밑도 끝도 없이 아쉬움만 남긴 채 꿈은 꿈으로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아리땁고 현숙해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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