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픽션

초가을 골목길/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8. 27. 22:30

 

 

 

 

 

 

 

 

 

 

 

 

 

 

 

 

햇님 미용실 조그만 화단, 꼬맹이 석류나무에 탱자만큼 작은 빨간 석류가 입을 벌렸다.

앙증스럽다.

지나간 오월엔 백합향이 그윽했다.

 

주황빛 양대꽃이 곱게 피어있는 저택의 초인종을 눌렸다. 인기척이 들렸다. 안주인인 듯 했다.

"지나가는 길손입니다. 양대꽃이 고와서 폰에 담아보려고요. 바깥에서는 풍광을 잘 잡을 수가 없어서요.

죄송하지만 대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발자국소리가 들려나왔다. 도둑놈 목소린 아니라고 여겼나보다.

오십줄에 접어든 듯한 안주인이 "찰칵!" 하고 대문을 열어줬다.

저택도, 안주인 여사님도 품격이 가득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개별블로그를 가지고 있습니다 . 오늘 찍은 여사님댁의 사진은 제 블로그에 올라갑니다."

"아, 예!"

생긋 웃으며 안주인이 대답했다.

 

폰을 집어들고 골목길을 나다니다 보면,

노는데 정신이 팔려 차오는 것도 모르는 철부지 까만 길냥이를 만나기도하고,

손수레에 파지 가득싣고 힘겹게 끌고가는 저소득 할머니의 삶의 무게를 만날 때도 있다.

운좋으면 오늘 같이 가슴이 넉넉한 살가운 이웃을 만나기도 한다.

그랬다.

지나간 오월 어느 날, 시청앞 저만치 떨어진 주택가 널따란 공한지를 가득 덮은,

연분홍빛 접시꽃을 만나던 날은 가슴이 설렜다.

군에서 제대하던 해인 1971년 3월 내가 사랑한 고향마을 희야네 집 울타리 밑에도

연분홍빛 접시꽃이 피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제대장병 스물다섯, 희야는 열아홉꽃띠였다.

 

새월이 한참 흘렀다.

나는 일흔 셋의 노인네 되었고,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희야는 예순 여섯, 뉘집 할머니 되었을 게다.

수년 전, 고향마을에 함께 살았던 아홉살 적은 생질이 전해줬다.

희야가 카페에 떠다니는 외삼촌 글을 읽는다고.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귀뚜라미 등에 업혀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오늘밤 자고 나면 가을은 저만큼 더 가까이에  와 있을 것이다.

'미니 픽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국화/문경아제  (0) 2019.10.08
꿈이야기/문경아제  (0) 2019.10.06
잿빛알록아기고양이/문경아제  (0) 2019.08.18
풀벌레 우는소리 들렸다/문경아제  (0) 2019.08.07
길냥이 가족들/문경아제  (0) 2019.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