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침 산책길/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8. 14. 22:50

 

 

 

 

 

 

 

 

 

 

 

 

 

 

 

 

 

오늘아침에도 여뉘날처럼 산책길에 나섰다.

우리 집에서 골목길 사거리를 지나 세번째 집이 최 시인댁이다. 무성하게 자란 키위넝쿨이 지붕을 가득 덮었다.

올해도 키위를 사과상자로 대여섯 상자는 따겠다.

해마다 최 시인은 가을에 키위를 수확하면 몇 키로씩 나눠주곤 했다. 올해도 최시인에게 키위 좀 얻어먹게 생겼다.

영주교회 현관에는 커피자판기가 한대 놓여있다. 집에서 커피한잔 못하고 나왔을 땐, 꼭 저 자판기에서 신세를 지곤한다.

오늘아침에도 한잔의 커피를 저 자판기에서 뽑아먹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딴다'고 했다.

저렇게 현관에 커피자판기를 설치해두면 집주인은 단 얼마간의 수익이 떨어져서 좋을 것이요,

길가는 나그네는 허전한 입을 한잔의 커피로 달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건들바람이 불어온다.

입추(立秋)를 지나고부터 기온이 확연히 달라졌다.

한낮이면 푹푹 삶아되지만 아침 저녁으론 서늘해졌다.

얼마전부터 밤이면, "귀똘귀똘!" 귀또리가 울어되기 시작했다.

매밀잠자리 두어마리가 파란하늘을 날아다닌다.

뭉개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1980년대의 시인 박노해(朴勞解 본명 박기평)는

'억압받는 부당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자'라는 뜻으로 필명을 박노해로 지었다고한다.

그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열악한 작업환경이라는 최악의 한계 상황을 기어서,

낮은 포복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한 노동자 시인이었다.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을 읊어보자.


길고 긴 일주일의 노동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에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기인 이별에 한숨쉬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뿜으며

바삐 팽개쳐진 아내의 잠옷을 집어들면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 위에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날이 밝으면 또다시 이별인데,

괴로운 노동 속으로 기계 되어 돌아가는

우리의 아침이 두려웁다


서로의 사랑으로 희망을 품고 돌아서서

일치 속에서 함께 앞을 보는

가난한 우리의 사랑, 우리의 신혼행진곡.


박노해(본명, 박기평)그는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 좌파문인이었다. 해서 그의 젊은 시절은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옥고로 점철되었다.

시는 진솔했지만 그는 사회주의에 민주주의를 접목하려는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문인이었다.

 

집에 틀어박혀서 아침부터 집사람 갖은 잔소리 듣느니 이렇게 밖에 나와 자판기커피한잔 뽑아먹으며,

하늘에 떠있는 뭉개구름에 맘실어보내는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하긴, 집사람의 잔소리를 아주 이해못하는 건 아니다. 집사람 입장에선 잔소릴 할만도 하다.

40여 년간 한평생을 일했다고, 손끝하나 까닥하지 안으려는 완전 백수이기 때문이다.

할일없이 빌빌거리는 백수건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노해가 억압받는 부당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자'라는 의미로 필명을 '박노해'로 지었다면

난, 시도때도없이 퍼부어되는,

'아내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되자'란 뜻으로 필명을 '아잔해'라 지었다. 물론 제2의 필명이긴 하지만.

버릇처럼 퍼부어대는 아내의 잔소리도,

듣기싫어서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나도,

병자이긴 마찬가지다.

止,止,止,止의 미덕을 모르는 집사람이나

아내의 잔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을 줄 모르는 나나

가슴이 팍팍한 병자이긴 마찬가지다.

"땡그랑 땡그랑땡 땡그랑땡 땡그라앙!"

두부장수종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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