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르라미가 울었다/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7. 13. 10:21

 

 

 

 

 

 

어제 오후였다. 

시내 김내과에서 집사람 위장약과 내 혈압약을 처방받아

보건약국에서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불바위를 지나 숲길에 들어서니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쓰르르 쓰르르"

쓰르라미소리였다.

쓰르라미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청각에 따라, "찌르르 찌르르"라고 들리기도 한다.

해서 어릴 적, 고향마을 골목길대장노릇을 할 때, 우리 땅꼬마들은 쓰르라미를 찌찌매미라고 불렀다.

올해들어 첨 들어보는 매미소리였다.

매미가 운다는 건, 한여름에 들어섰다는 징조다.

쓰르라미가 울기시작하면 울타리 밑에 호박꽃이 피어나고,

애호박이 달린다.

비오는 여름날이면 어머니는 울섶에 달린 애호박을 따서 칼국수를 끓여주셨다.

양념잘한 간장에 참기름 두어 방울 떨어뜨려 후룩후룩 먹어대던 칼국수 맛은 천하제일의 별미였다.

누가 호박꽃을 못생겼다고 했는가.

비내리는 여름날, 울섶에 피어난 노란 호박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호박꽃은 품이 넓다.

호박꽃의 품은

벌 나비의 제민소(濟民所)다.

벌 나비의 먹거리인 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하면

하늘엔 뭉개구름 두둥실 피어오르고

해넘어가고 난 뒤 서쪽하늘에 피어오른 빨간 저녁놀은 더 더욱 곱다.

쓰르마미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잊어버린 여름날의 추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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