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고유의 명절, 설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 다가오면 어느 집을 막론하고 안사람들은 무척 바쁘다.
우리 집사람도 어제 오후, 학유정에 놀러가려고 나서는 내게 떡쌀 닷되를 내어주며 가래떡을 빼오라고 했다.
오늘 아침엔 고용노동부에 가려는 나를 붙잡고, 쌀 한되를 자전거에 실어주며 틔밥을 틔워 강정을 만들어오라고 당부했다.
그런 집사람이지만 시장은 내가 봐주려해도 생뚱맞은 짓거리 한다며 맡기질 않는다.
덜 떨어지고 조금은 어눌한 나를 믿을 수가 없었기에 그리했을 것이다.
열한시쯤 상설시장에 있는 틔밥틔우는 가게에 들렸더니 손님은 이미 만원이었다.
윙윙거리며 빙빙돌아가는 기계는 "펑펑!"굉음을 내며 틔밥을 틔워댔다. 좌판엔 일꾼들이 널어서서 강정을 만들어대고 있었다.
순번을 헤아려보니 내차례는 한참 멀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엄청 추웠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무 추워 얼얼했다.
할수없이 오후에 찾아 가기로 하고 자전거 핸들을 집이 있는 꽃동산 방향으로 돌렸다.
설을 쇠기 위해 사람들은 고향을 찾는다. 설을 이틀쯤 앞두고 민족의 대이동은 그렇게 시작된다.
멀리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고향집을 찾아오고, 조상의 산소에 성묘(省墓)를 하고,
집안이나 동네의 웃어른께 새배를 드리는,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날이 설명절이다.
물론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고 숨돌릴 겨를도 없는, 그래서 명절증후군을 앓아야하는 부인들에게는 설 명절은 원망스런 날일지도 모른다.
이땅의 부인들이여,우리 남정네들은 알고있으니 그리 섭섭해마오.
당신들께서 흘린 땀과, 살가운 정성이 밑거름이 되어 떨어져 살아가는 가족이 서로 만나 웃을 수 있고,
그렇게 웃다가 헤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남정네들은 알고 있으니 그리 섭섭해하지마오.
그 옛날,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이 다가오며 우리네 어버이들은 마을어귀에 서서 객지 나간 자식들을 기다리곤 하셨다.
자식들을 기다리며 서 계셨던 어버이들의 그 모습은 아름다웠고 처연했다.
한세상 살아가다보면 간혹, 이런 말을 할때도 있다. "세상살이 힘든데 차리리 설이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아무리 그렇다해도 설이나 추석명절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민족고유의 명절이니까.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맥을 이어내려온 전통명절이니까.
객지 나간 자식을, 애물단지 딸아이를, 든든한 아들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손녀딸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아름답지 아니한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내려오는 기다림의 저 긴 줄이 그대의 눈에도 정녕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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