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뽕도 따고 님도 만나고/문경아제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9. 8. 25. 10:31

 

 

 

 

 

 

 

 

 

 

 

 

 

 

 

아침 여덟시,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선다. 며칠째 결행(缺行)한 아침산책을 하려고 대문을 나선다.

뉘집 대문앞에 피어난 모시꽃이 곱다.

해마다 저 집 대문앞엔 저렇게 모시꽃이 피어나곤 했다.

불바위에서 조금 떨어진 구성마을에 사는 친구 경호네집 정원에도 해마다 모시꽃이 피어났다.

친구네집 정원에 피어난 모시꽃도 저 집 대문앞에 피어난 꽃처럼 곱기만 했다.

모시꽃은 미색(米色)이다.

모시꽃의 꽃말은 '변함없는 어머니의 사랑'이란다.

꽃말이 꽃처럼 순결하고 곱다.

 

햇님원룸 뒤, 넓은 텃밭에 둥그런 박이 풍요롭다.

햇살과 바람과 비가, 봄부터 여름까지 서로 밀고 당기며 힘보태어 박 몇동이를 저리 살찌웠을 것이다.

박은 풍요를 상징한다.

 

소년이 태어나던 날밤

소년의 집

초가지붕에는

하얀 박꽃이 피었습니다

 

청년으로 자라난

소년이 장가가던 날밤

소년의 집 마루에는

곱디 고운

청사초롱이 걸렸습니다

        문경아제의 시, 「박꽃」중에서

 

아침산책은 나를 추스리는 길이다.

나를 수련시키는 길이다.

나를 추억의 오솔길로 몰아넣는 길이다.

강과 들판을 지나 바람속으로 달려가노라면

어느새 난 그 옛날 까까머리 소년으로 돌아간다.

까만 무명바지와 적삼입고, 단발머리 누나 손잡고 우리 집 삽짝을 나서는 땅꼬마로 돌아간다.

 

하늘이 희뿌여서 소백산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는 산 소백산이 보이지 않는다.

멀리 어슴푸레 영일교가 보인다.

눈을 감는다.

뒷집 동희 누나도,

앞집 옥희 누나도,

그 옛날, 내가 사랑했던 희야가 다리를 건너온다.

 

오늘아침 산책길엔

뽕도 따고

님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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