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유정(鶴遊亭)에서 놀다가 동네한바퀴 빙돌고 집에 왔더니 여섯시가 조금 넘었다.
현관을 들어서자 집사람은 청소라도 하는양 부산을 떨어대고 있었다.
배는 고픈데 집사람이 해대는 뽐새를 보아하니 저녁은 언제 먹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현관을 나서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래, 멸치국수나 한그릇 먹고오자!'
멸차국수로 저녁을 때우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리움과 석별의 애틋함이 교차하는 곳이다.
기차역 플랫폼과 대합실은 시의 감(感)을 얻기 위해 이따금 찾는 장소다.
이른 아침에도, 한낮에도, 야심한 밤에도
시간에 구애없이 찾아오는 곳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언제부턴가 실팍한 가슴속에 자리매김한 시인의 길이었다.
영주역에서 꽃동산 가는 길은
그 옛날 삼십대초반 젊은 시절, 문경 가은에 있는 고향마을에 설이나
추석쇠고 집사람과 둘이서 두런두런 얘기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전경이 집에 갈 여비가 부족하다며 2천원을 보태달라기에 두말 않고 2천원을 전경의 손에 쥐어주던 길이었다.
작년 가을,
제천에서 고향친구 재달이 만나고 이런저런 옛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흐르는 세월속에 길은 많이 세련되었지만 사람은 몰라보게 늙어버렸다.
저쯤에 영주교회 첨탑 빨간십자가가 보인다.
집에 거지반 다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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