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하다보면, 한세상 살아가다보면,
그 옛날 고향마을 초입의 고개, 목고개가 그리움으로 다가올 적이 많았다.
목고개에 나타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짖궂은 장난을 걸어 왔다는 도깨비가 그리울 때도 있었다.
궂은 비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때나, 목고개 뒷산에서 "부엉부엉!" 부엉이 울음소리 들리는 어스름 달밤에 목고개를 넘어오려면 꽤나 무서웠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농암장에서 친구 만나 막걸리 두어 되 마시고 노랫가락 불러가며 목고개를 넘어오던 성너머 용궁어른 앞길을 막아 선 놈이 악명 높은 도깨비 벌코였다.
코를 벌름거리며 벌코가 그 꺽꺽거리는 희안한 목소리로 용궁어른을 비아냥댔다.
"어이, 영감탱이. 농암장에 갔다오남! 그라만 탁배기 두어 되 걸쳤을 끼고, 힘도 펄펄 날끼고, 그카만 내캉 씨름 한판 붙어볼까. 내가 이기면 영감탱이를 가시밭으로 냇물로 끌고 댕길 끼고, 택도 없는 야그지만 내가 지면 영감탱이를 내 등짝에 업고 집에 모셔다주지. 어떤가? 영감탱이, 한판 붙어볼란가."
버러장머리 없는 도깨비 벌코는 반말지꺼리를 해대며 용궁어른을 까실렸다.
주제를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도깨비였다.
딴엔 조선땅에 산다고 하얀 무명바지저고리를 입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래에! 그라만 한판 붙어볼까.
삽바가 없으니 통씨름으로 하자구나."
"영감탱이 더럽게 말 많구만."
'이노무 도깨비 정신 제대로 차리게 버르장머리 확 뜯어고쳐야 되겠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용궁어른이 도깨비 벌코를 덜렁 들어올려 길가 뾰족 바위에 냅다쳐박아버렸다. 씨름꾼 용궁어른의 주특기 들배지기였다.
어지간히 재수없었던 도깨비 벌코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주 함창, 예천에까지 사방 백여 리 안에서는 소문난 씨름꾼으로 이름 꽤나 날리던 용궁어른에게 씨름하자고 대들었으니 말이다.
뾰족 바위에 다리를 부딛쳤으니 다리가 성할리가 없었다.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고 싶었지만 또 무슨 낭패를 당할지 알 수 없어 벌코는 부르진 다리를 질질끌고 달아나며, "아이구 도깨비 죽는다!"라고 했다나.
그 자슥아 내게 걸렸다면 그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게다.
학창시절 3년동안 수련한 유도 솜씨로 업어치기로 매다꼽고, 숨이 켁켁거릴 때까지 조르기 해대며 손바닥으로 땅바닥 두드리며 살려달랄 때까지 욕보일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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