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구역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11. 20. 19:24

 

 

나는 영주가 토박이가 아닌 객지 사람이다. 객지라고는 하지만 영주에서 살아온 햇수가 고향인 문경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훨씬 많다. 스물아홉에 영주에 왔으니 어언 40년을 영주에서 살아온 셈이다. 이쯤되면 토박이나 진배 없지 아니한가!

둘째매형은 제대를 하고 난 뒤 1970년까지 강원도 철암에서 광부로 일했다. 문경에서 강원도를 가려면 반드시 영주를 거쳐야 된다. 68년쯤이었으리라. 첫휴가를 나와서 철암 매형집에 가려고 점촌에서 버스를 타고 영주에 왔다. 그 당시에는 점촌에서 영주오는 철길이 없었다.

털레털레 걸어서 기차역을 찾아갔다. 지금 우리가 '구역전길'이라고 부르는 길을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던 셈이었다. 구역 앞 거리는 온갖 노점이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묵장수, 국화빵 장수, 국수장수, 같은 먹거리 장사가 가장 많았다.

어느해 매형댁을 다녀오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묵을 좋아하셨다. "영주역 바로 앞에서 뽀얀 묵을 한그릇 사먹었는데 맛이 한개도 없드라! 밀가루를 썩은 것 같드라."

표를 끊고 플렛폼에 나가려는데 헌병이 끌고 역사 뒷편으로 가더니 시비를 걸어왔다. 예부터, '노인네 망령은 고기로 달래고 아전 망령은 엽전으로 달랜다!' 는 우스게 소리가 있었다. 보아하니 그헌병 돈이라도 몇푼 후려내려는 심산이었다. 돈 2,000원을 주고 그자리를 빠져나왔다.

옛날에는 기적소리가 아주 웅장하게 들렸다. 그러나 요즈음의 기적소리는 그렇게 웅장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버스에, 화물차에, 자가용에 밀려난 철도는 사양길을 걷고 있다. 나라에서 그 무슨 특단의 정책을 내놓지 않는 한 그것은 시대의 흐름일 뿐이다. 그 흐름을 감지하고 있는 철마도 서글퍼서 그 옛날 같은 웅장한 기적소리를 내지 못하리라.

기적소리가 그러하듯 역 옮겨간지 40년이 지난 지금 구역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외롭게 서있는구역자리표지석만이 화려했던 그 시절의 영광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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