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트가기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11. 18. 16:42

 

 

가을비가 추즐추즐 내린다.

이런 날엔 맘맞는 친구들 몇이 모여앉아 고스톱치면 닥상이다. 집에 죽치고 누워있으면 쓸쓸한 노년이 더더욱 안스러워진다.

오후, 감기끼가 있어서 따근한 아랫목에 등을 눕히고 있는데 폰이 울린다. 집사람에게서 온 전화다. 보나마나 반가울 리 없는 전화다. 자전거 끌고 마트에 나오란다. 배추세일한단다.

이슬비가 오는 듯 마는 듯이 내린다. 혹시나 하고 우산 두개를 자전거에 싣고 집을 나섰다.

남자들은 거의가 뚱눈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집사람 짐꾼노릇하러 심심찮게 마트를 따라가곤 하지만 갈때마다 헤맨다. 그런데 집사람은 요리조리 그 거미줄 같은 점포사이를 잘도 헤집고 다닌다.

집사람따라 마트가기가 싫은 것은 물건 사는 시간보다 눈요기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 지루한 시간이 더할 수 없이 짜증스럽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좋은지 집사람은 얇은 주머니에 돈 몇 푼 넣고 그 복잡한 지하골목길을 신바람나게 쏘다닌다.

그래도 어쩌랴. 우리는 부부인 것을, 집사람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인 것을. '그래, 이사람아! 당신이 즐거우면 나도 좋은거지.' 그렇게 마음 추스려 먹고 짐보따리 잔뜩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역  (0) 2015.11.20
셋방살이.2  (0) 2015.11.20
사노라면  (0) 2015.11.10
  (0) 2015.11.03
외갓집  (0)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