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외갓집

하늘과 바람과 별시 2015. 11. 2. 11:42

 

엊그제 저녁때, 농암에 살고 계시던 외숙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외종제로부터 받았다. 어쩐다 꼭 다녀와야 되는데, 걱정이 앞섰다. 내일 근무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2초소와 3초소, 기사실에 사정을 얘기했더니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다.

외숙모 영정 앞에 섰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어릴 적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던 작은외갓집이었다. 심심하거나 아버지께 야단을 맞고 속이 상할때면 꼭 외갓집을 찾곤 했었다. 목고개와 가실목고개 두 고개 너머에 있는 작은외갓집은 아늑한 피신처였다.

작은외갓잡은 원래 작약산 기슭에 있는 안룡이라는 동네에 있었다. 어릴적엔 곧잘 어머니 손에 이끌려 목고개에서 버스를 타고 가실목고개를 넘어 안룡 외갓집에 갔었다. 열두굽이 고갯길 뭉어리재를 버스는 꼬불꼬불 굽잇길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뭉어리재를 넘어가다가 사고를 일어키는 버스도 간혹 있었다. 그래서인지 뭉어리재에는 훙흉하고 기괴하고 등골이 오싹하는 전설이 서려있었다.

양범간이정류장에서 내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가로질러 노란 서숙밭길을 지나가곤 했었다. 조밭 이랑에는 듬성금성 심겨져 있는 붉은 수수가 묵직한 고개를 잔뜩 늘어뜨리고 바람에 흔들거렸다.어머니는, 외갓집엔 머리가 새하얀 외할머니가 외손주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셨다.

어머니 손잡고 조작조작 걸어서 외갓집 가던길이 참으로 그립다. 술잔이 돌아온다. 긴 환영에서 부스스하고 깨어난다. 어릴 적, 참으로 정겹게 지냈던 외종제 경숙이, 아니 김실이 한 번 안아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살 작은 김실이도 예순 여덟 우리 모두 일흔즐에 들어선 노인네다. 인정머리라고는 눈굽만큼도 없는 세월이 동생과 나를 그렇게 노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외숙모! 부뜰이 갑니다. 부디 극락왕생 하옵소서.' 그렇게 인사 드리고 장례식장문을 나섰다. 삶터 영주로 돌아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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